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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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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노회의 창립

1. 경기노회에서의 분립

- 1957년 11월 19일 연동교회에서 열린 제69회 경기노회에서 영흥시찰회가 청원한 노회분립안을 받아 분립하기로 하고, 그 방법은 각 시찰장들에게 맡겨 다음회에서 보고하기로 결의하였다.1)

- 1958년 5월 13일 새문안교회에서 모인 제70회 경기노회의 위임사항이었던 노회분립건은 한강(漢江)을 경계로 북쪽을 경기노회로, 남쪽을 한남노회(漢南老會)로 이름을 붙여 분립하는 것을 가결했다.2)

- 1958년 9월 25일∼10월 1일까지 영락교회에서 모인 제43회 총회에서 경기노회와 한남노회로 분립할 것을 의결했다.3)

- 같은 해인 1958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신학노선의 갈등으로 예장과 합동으로 갈라지게 되어 교계에 큰 치명적인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었다.

- 1958년 11월 18일 승동교회에서 모인 제71회 경기노회에서 한남노회의 분립예배를 드린 후, 같은 날 영등포교회에서 소집책임자인 강헌집 목사의 사회로 한남노회 창립예배가 드려짐으로 현 영등포노회의 전신인 한남노회가 이 땅에 탄생되었다.

2 . 제1회 한남노회(創立老會)

1) 창립예배와 초대임원 구성

1958년 11월 18일 오후 7시에 새롭게 태어난 한남노회는 목사 총대 47명과 장로 총대 53명, 계 100명의 회원들이 모여, 초대 노회임원을 다음과 같이 선임했다.4)

- 노회장 :강헌집 목사, 부회장 : 유재한 목사, 서 기: 백용종 목사, 부서기: 노기원 목사, 회록서기 : 김수일 장로, 부회록서기 : 김리관 목사, 회 계 :이히영 장로, 부 회 계: 손원직 장로

2) 초대노회 각 시찰명과 시찰장

(1) 중앙시찰 시찰장 박만석(9개 교회 중 목사회원 4명, 장로회원 9명)
(2) 경남시찰 시찰장 이락주(6개 교회 중 목사회원 5명, 장로회원 6명)
(3) 영흥시찰 시찰장 유재한(16개 교회 중 목사회원 14명, 장로회원 16명)
(4) 인천시찰 시찰장 이기혁(11개 교회 중 목사회원 6명, 장로회원 10명)
(5) 경서시찰 시찰장 김오성(10개 교회 중 목사회원 3명, 장로회원 10명)

① 공로목사 1명(배진성 목사)
② 무임목사 7명
③ 새로 이명, 입회허락된 목사회원 7명
방지일(총회전도부에서) 송창서(평양노회에서) 김병철(전서노회에서)
이근익(황해노회에서) 김원명(안주노회에서) 오병수(군목, 경기노회에서)
차관영(경기노회에서)

3) 초대노회 각 부서명과 부서장

4) 주요 결의사항

(1) 인천 성경고등학교를 인가하다.
(2) 영등포 성경고등학교를 직영하기로 결의하다.
(3) 은광 중·고등학교를 직영하기로 결의하다.
(4) 대만교포 교회당 건축을 위해 각 교회가 사과 한 상자 이상을 거출하기로 하다.

- 제1회 한남노회 회원 일동(1958. 11. 18.)

3. 제2회 한남노회(시찰이름 변경)

1959년 4월 21일 오후 2시~22일 오후 9시 30분까지 상도동교회에서 소집된 제2회 노회에서는 중앙시찰을 광주시찰(廣州視察)로, 경서시찰은 김포시찰(金浦視察)로 명칭을 변경하기로 의결하다. 한남노회 창립기념 전도사업을 갖기로 하고, 노회 전도부와 여전도회연합회가 연합으로 경기도 이천군 이천읍에 정두병 장로를 파송하여 실시하기로 결의하였다.
또한 5월 3차 주일에는 교회 건축헌금을 하여 내곡, 신동, 능꼴, 만선, 신탄중앙공도, 산대, 남촌교회 등 8개 교회를 보조해 주기로 하는 것과 주일학교연합회 활동을 위하여 어린이 주일 특별헌금을 실시하여 연합회로 보내 주기로 결의했다.
한편, 총회에 한남노회 총대로 파송할 첫 번째 총대로, 목사 총대에 강헌집, 백용종, 이기혁, 유재한, 김오성 등 5명과 장로 총대로는 손원직, 이히영, 김성렴, 이병덕, 박수덕 등 5명을 선임하기로 했다.

4. 창립시 한남노회 교세

제2회 노회보고서에 의하면 한남노회에 등록된 교회수와 목사 및 세례교인수는 다음과 같다.

(1) 영흥시찰내 교회수 30교회 목사수 19명
(2) 인천시찰내 교회수 16교회 목사수 8명
(3) 경남시찰내 교회수 14교회 목사수 5명
(4) 광주시찰내 교회수 12교회 목사수 3명
(5) 김포시찰내 교회수 9교회 목사수 7명
(6) 기관목사 2명

- 합 계 : 교회수 81교회, 목사수 44명, 무임목사 6명 총 계 50명6)

- 노회내 세례교인수 4,680명 노회 총예산 1,311,030환

5. 초창기의 노회일정

1959년 10월 6일 오후 1시~8일 오후 5시까지 영등포교회에서 개회되었던 제3회 한남노회는 목사 총대 53명, 선교사 2명, 장로 총대 58명 등 합계 113명의 총대가 모였었다. 이는 창립노회시보다 노회 총대수가 13명이 증가된 숫자이다.

제1회 때부터 노회일정은 3일간의 장시간 계속하였고, 사경회까지 겸하여 모였었다.
제3회 노회록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6. 제3회 한남노회록초(老會錄抄)

1) 1959년 10월 6일 오후 1시. 영등포교회에서 노회장 강헌집 목사의 사회로 개회예배를 드리다.
2) 성찬식:10월 6일 하오 2시. 유병관 목사의 집례로 성찬식을 거행하다.
3) 사무처리:6일 하오 2:30. 노회장 강헌집 목사의 사회로 개회되어 절차보고와 총회 총대보고를 받고 시간이 되매 정회를 하다(하오 5:10분).
4) 사무처리:6일 오후 7:00∼9:05분까지

① 총회 문제 토의
② 임원선거:새로 선임된 임원은 다음과 같다.
- 회 장 : 유재한 목사(42표), - 부 회 장 : 김오성 목사(32표)
- 서 기 : 백용종 목사(41표), - 부 서 기 : 백동섭 목사(30표)
- 회록서기 : 김이관 목사(16표), - 부회록서기 : 노기원 목사(15표)
- 회 계 이히영 장로(30표) 부 회 계 최용찬 장로(6표)

임원교체식은 명일로 미루고 지시위원 지시가 있은 후 찬송가 3장을 합창하고 정회하니 9시 05분이러라.

5) 10월 7일 오전 5시. 새벽기도회

이낙주 목사의 사회로 개회되어 이영주 장로로 기도케 하고, 성경 사무엘 상 6:7∼21을 낭독 후 찬송가 364장을 제창하고, “벧세메스로 가는 두 송아지”라는 제목으로 이낙주 목사의 설교가 있은 후 찬송가 362장을 제창하고 이 목사의 축도로 폐회하다.

6) 10월 7일 오전 9시. 직전 회장 강헌집 목사의 사회로 찬송가 354장을 제창하고 이관삼 목사로 기도케 한 후, 갈라디아서 5:15∼26을 낭독하다. 서기가 회원을 점명하고 회무를 계속 처리하다.

① 회록서기가 전 회록을 낭독하니 수정하고, 동의와 재청이 있어 받기로 가결하다.
② 신·구임원을 교체하여 환영하고 신임회장 유재한 목사의 인사의 말씀이 있은 후 영등포교회 부인전도회로부터 휘장을 임원들에게 분배하다.
③ 선교복음 전도희년(宣敎福音 傳道嬉年) 75주년 기념준비위원으로부터 준비내용을 별지와 같이 보고하다. 시간이 되었으므로 정회하니 오전 10시러라.

7. 경건회(敬虔會)

사회­ 한승직 목사
찬송가 11장을 제창하고 김대조 목사의 기도와 성경 열왕기 하 4:8로 끝절까지 낭독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 제하의 한승직 목사의 설교가 있은 후 찬송가 303장을 제창하고, 김시원 목사의 기도로 폐회하다.

① 오전 10:40분. 부회장 김오성 목사의 사회로 찬송 191장을 제창하고, 김청달 목사의 기도로 회무를 계속 진행하다.
② 선교복음전도희년 75주년 기념준비위원회 보고는 재론하였으나 진행일체를 위원회에 일임하기로 가결하다.
③ 영등포교회 부인전도회에 감사의 박수와 감사장을 보내기로 가결하다.

8. 분열 중에 있는 44회 총회를 수습하며 평화시키기 위하여 수습위원 7인을 선임하되, 전(全) 임원과 각 시찰장이 연석하여 택정보고(擇定報告)하도록 가결한 후 정회시간이 되매 안기령 목사 기도 후 정회를 선언하다.

9. 하오 2시. 회장 유재한 목사의 사회로 찬송가 364장을 제창하고 성경 시편 23편을 낭독한 후 김병규 목사의 기도로 회무를 계속 처리하다.

① 전도부 보고 중 이천개척교회를 위하여 당석에서 헌금해 주기로 한 것은 저녁예배 시간에 헌금해 주기로 가결하다(헌금 14,400원).

10. 10월 7일 오후 7시. 목사 안수식 및 강도사 인허식순(認許式順)

- 사회:회장 유재한 목사
- 묵 도 일 동
- 찬 송 351장 일 동
- 기 도 이히영 장로
- 성 경 욘 4:1 백용종 목사
- 찬 양 영등포교회
- 설 교 김홍직 목사
- 목사안수식 김관석 유재한 목사
① 서 약 사회자
② 안수기도 배진성 목사
③ 안 수 례 안수위원
④ 권 면 강헌집 목사
- 강도사 인허 이진수, 호경수 유재한 목사
① 서 약 사회자
② 기 도 김형원 목사

- 선 포 사회자

11. 선교복음전도 희년 75주년 기념 식순

- 찬 송 18장 다같이
- 기 도 김오성 목사
- 성경낭독 출 9:35 박만식 목사
- 선교 75주년 약사 : 이기혁 목사
- 기 념 사 : 방지일 목사
- 표 창 식 표창자 약사 : 김광서 목사 ,배진성 목사, 김청달 목사, 김홍직 목사, 방지일 선교사

남금섭 장로, 김준기 장로, 허경화 여사(7명)
- 축 창 이중창 영등포교회
- 찬 송 다같이
- 축 도 계효언 목사
- 폐 회 계효언 목사

12. 10월 8일 새벽기도회(오전 5:00) 인도:김영만 목사

- 찬 송 265장 다같이
- 기 도 김명국 목사
- 성 경 빌 2:1­4 사회자
- 설 교 낙천적 생활을 하자 사회자
- 찬 송 160장 다같이
- 폐회기도 사회자

13. 10월 8일 오전 9:00. 부회장 김오성 목사의 사회로 찬송가 443장을 합창하고, 이정옹 목사로 기도케 한 후 성경 예레미야 6:16∼20을 낭독하고 회무처리를 계속하다.

① 평화위원 선정위원으로부터 선정한 7인을 다음과 같이 보고하다.
방지일, 최용찬, 김문협, 박만식, 이기혁, 유재한, 김오성 제씨러라.
이기혁 목사로부터 평화위원이 경제가 없이는 목적달성을 할 수 없으니 본 노회에서 경비 20만환을 지출해 줄 것을 청구함으로 허락하기로 하다. 경건회 시간이 되었으므로 정회하니 오전 10:00시더라.

14. 경건회 인도:백동섭 목사

- 찬 송 456장 다같이
- 기 도 문병섭 장로
- 성 경 마 20:21­29, 요 13:13­15 사회자
- 설 교 평화에 대한 예수님의 정신 백동섭 목사
- 찬 송 361장 다같이
- 축 도 최석주 목사

15. 오전 10:40분. 회장 유재한 목사 사회로 찬송가 148장을 제창하고 성경 시편 137편을 낭독한 후, 김득만 목사로 기도케하고 경건회 전의 사무처리를 계속하다.

① 지난 노회에서 결의한 바 있는 소사 양세원 목사께서 현재 신병으로 경제난의 어려움에 있음을 보고받고 당석에서 헌금하니 8,630환이더라.
② 교육부 보고 중 본 노회 직영으로 되어 있는 은광 중·고등학교를 인정해 줄 것을 원안대로 받기로 하다. 정회시간이 되매 방양보 목사의 기도로 정회하니 12시더라.

16. 10월 8일 하오 1:15분. 회장 유재한 목사의 사회로 찬송가 240장을 부르고 성경 시편 1편을 낭독한 후 방지일 목사로 기도케 한 후 회무를 계속 처리하다.

① 농촌부 조직보고 받기로 하다.
② 재정부 조직보고 받기로 하다.
③ 청소년지도부 사업보고 받기로 하다.
④ 평화위원 7인으로부터 평화통일안을 보고하니 별지와 같이 받기로 하다.
⑤ 회무처리 끝날 때까지 시간연장하기로 하다.

내회 장소는 양평동교회로 하고 폐회동의가 있어 성경 마태복음 28:20을 봉독한 후 찬송가 468장을 제창하고 축도로 폐회하니 5시 40분이러라.

- 회 장 : 유 재 한 , 회록서기 : 김 이 관


한남노회의 활동

1. 총회의 평화수습위원회(平和收拾委員會)

1959년 10월 7일 영등포교회에서 회집한 제3회 한남노회에서는 분열 중에 있는 제44회의 교단총회를 평화적으로 수습시키기 위하여 평화수습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7인 위원을 선임하여 노회의 임원과 각 시찰장이 연석하여 총회 평화수습위원회를 조직하여 노회에 보고하기로 결의하였다.
동위원회는 별도의 모임을 갖고 총회 평화수습위원으로 방지일, 박만식, 이기혁, 유재한, 김오성, 최용찬, 김문협 제씨를 선임하여 노회에 보고하고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노회에서 소요경비 20만 환을 지출키로 하였다.
동평화위원 7인은 함께 모여 평화통일안을 작성하여 노회에 보고하고 계속적으로 수습노력을 하기로 결의하였다. 한편 제4회 노회에서 동위원회가 그동안의 활동상황을 보고하고, 노회석상에서 우리 노회의 태도를 확정하자는 동의안을 결의함에 있어 가부 결정권을 회장에게 일임하기로 하였다.
동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증경총회장단을 초청하여 그분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다음과 같이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했다.

초 청 장

2. 비상계엄령(非常戒嚴令)으로 인한 노회 중단과 임시노회

1960년 4월 18일 양평동교회에서 소집되었던 제4회 노회가 순조롭게 모든 회무가 진행되던 중 3일째인 4월 20일 9시 30분, 목사안수식 및 강도사 인허식을 막 끝내려는 시간인 11시에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비상계엄령이 발표되었고, 이로 인한 모든 집회의 금지령이 내려져 본 노회도 잔여회무(殘餘會務)를 중단하고 모든 미진안건은 각 시찰장과 노회 임원회에 일임하여 피차 연락하며 처리하고, 필요시는 임시노회를 소집키로 결의하고 ‘현하 한국사태’를 위한 통성기도와 찬송가 456장을 합창하고 성경 마태복음 5:42∼48을 낭독 후 노회장 유재한 목사의 축도로 폐회하였다.7)
한편, 노회가 중단됨에 따라 미진안건 중 총회 총대선출건 등 안건을 위해 동년 8월 16일 오전 11시 30분 영남교회에서 제4회 회기 중 제1차 임시노회가 회장 유재한 목사의 사회로 개회되었었다. 이날 선출된 총대수는 목사 6명(이기혁, 노기원, 방지일, 김시원, 유재하, 백용종)과 장로 6명(차인선, 이히영, 김형배, 김문협, 임병덕, 곽응부), 계 12명이었다. 한편, 이날 선출된 목사 총대 중 방지일 목사는 현재 선교사의 신분으로 소속이 총회 선교부로 되어 있어 총대비를 총회에서 지급해 줄 것을 건의하기로 했다.8)

3. 협동사업부(協同事業部)

한남노회 규칙(規則)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은 부서가 있다. 그 부서가 협동사업부이다. 제3회 노회록을 보면 “협동사업부 보고는 이기혁 목사가 구두보고 하니 그대로 받기로 동의 재청으로 가결하다.”9)로 되어 있고, 이런 협동사업부 보고는 3회 이후 매노회시마다 노회의 부서로 보고가 되어지고 있다. 이 협동사업부는 총회에 와 있는 미국 선교부가 한국교회에 보내 오는 선교비를 각 노회로 분배해 주고 있는데, 노회에서는 이 선교비를 협동사업부에서 맡아 선교사업에 쓰기로 하고 그 업무를 관장하는 부서로 신설된 부서이다. 제5회 노회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보고사항이 기록되어 있다:“협동사업부 보고:선교사로 와서 수고하시며 본 노회 소속으로 되어 있는 옥호열 선교사가 미국에서 구호품을 수집하여 보내 왔으므로 이 구호품을 국민학교에 배정하여 분배케 하고, 구호품을 발송한 기관에 감사장을 보내기로 하다.”10)

4.「한남소식」지 발간

한남노회가 탄생된 3년 후인 1961년 10월에 「한남소식」(漢南消息)이란 노회 소식을 실은 유인물 제1호가 10월 20일자로 발간되었다. 이 소식지 제일 첫머리에 다음과 같이 이 소식지에 대한 취지설명이 “제 일신”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소식을 잘 아는 만큼 정이 더 통하는 것은 사람의 삶의 상징이다. 주의 몸된 교회로 조직된 우리 노회 안 각 교회소식을 서로 통하는 것의 필요를 느껴 이런 소식을 주고받기로 해본다.” 계속해서 「한남소식」지에 실릴 내용면과 배부방법에 대하여, “각 시찰 단위로 교회사정을 알게 해주기 바란다. 신앙생활의 적극성면, 신앙미담, 교회 각 부서 활동현황을 다룬 것들을 지회에 알게 하여 유익하고 기록에 남겨 참고로 하자. 개교회로서 직접도 좋다. 가능한 한, 한 달에 한 번씩은 주고받되 통신비도 절약해야 할 터이니 시찰단위로 보내기로 한다. 인천, 김포, 경남, 광주, 영흥, 각 시찰 서기들은 특별히 유의하셔서 이 소식을 더 살려 보자!”11)라고 했다. 그 후로 평균 매월마다 발행이 되었다. 경기노회로 개명이 되고도 계속 발행되어 오다가, 1968년 7월 29일자 제76호로 이 소식지는 끊어졌다.
이 「한남소식」지는 방지일 목사님이 익명으로 사재를 털어 가며 8년 간 손수 편집해서 꾸준하게 펴내셨다. 아쉬운 일은 이름도 없이 혼자서 사재를 털어 가며 발행하던 회보가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노회공지(公紙)로 계속 발행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 노회 사무실에 그 「한남소식」지가 제1호부터 76호까지 한 권의 책자로 묶여져 단 한 권만이 보관되고 있다.

5. 중화기독교회(中華基督敎會)

약 2년여 영등포교회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려 오던 영등포 지역내의 중국인들이 영등포구 문래동에 약 3천만 환의 예산을 들여 중국인교회를 신축하고 1961년 11월 19일 주일에 입당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우리 한남노회 경내에는 중국인 교회가 영등포와 인천 그리고 수원 등 세 곳이 있는데 이곳 영등포와 수원교회는 지금껏 자기 건물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영등포 중화교회가 자기 교회건물을 갖게 되어 수원지역만 자기 건물이 없는 셈이다. 전국적으로는 서울, 부산, 대구, 인천, 수원, 영등포 등 6개 교회가 있는데 자기 교회건물을 갖고 있는 교회는 부산까지 4곳뿐이라 한다. 또한 영등포노회가 이 건축에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준 바 있었는데 추가로 상도동교회에서 2,545원을 그리고 노량진교회에서 1,800원을 헌금해서 보낸 바 있다. 또한 영등포관내의 큰 교회가 이 중화교회의 예배용 의자를 위한 헌금을 해줄 것을 권장하기로 허락한 바 있고, 앞으로도 노회와 중화교회의 상호유대를 갖도록 한 바 있다. 중화교회는 중국선교사로 수고하셨던 방지일 목사님의 수고와 봉사가 있었다고 전한다.12)

6. 농어촌부 주관 축산운동 전개

노회 농어촌부는 제6회 노회에서, 협동사업부의 후원과 사회부의 협력하에 농촌의 미자립교회에 ‘농촌교회 자립을 위한 축산장려금’(畜産奬勵金)으로 일금 10만 환씩을 보조해 주기로 결의했다. 그 취지 내용은 미자립교회에 돼지를 사주고 1년 후 새끼돼지 1마리씩 노회에 상환하고 남는 이익금은 교회자립기금으로 쓰고, 노회는 그 상환된 새끼를 또 다른 미자립교회에 대여해 주기로 했다. 첫해인 1961년부터 광주시찰, 김포시찰, 인천시찰 순으로 이어지는데 62년 현재로 3개 시찰에서 시행되고 곧 번식이 될 예정으로, 다음은 영흥시찰의 차례가 된다. 이 축산운동은 그후 계속적으로 지속되었다. 1968년 노회 보고서에 따르면 그 수혜 교회와 수혜 수량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다.
1968. 3. 15. 현재
1968. 10. 노회 보고서
이 사업은 제20회 노회에서는 돼지로 상환하던 제도를 현금으로 시세에 맞게 상환하도록 하고, 업무 관장도 사회부에 넘겨서 사회부가 관리하도록 했다.13)

7. 전도부의 활동

한남노회 전도부는 노회창립시부터 노회내 교회부흥과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펴왔었다. 그 많은 사업 중에는 병원전도와 경찰서 전도 또는 미자립교회의 사경회 인도 등의 다양한 방면으로 활동을 해왔다. 그 중의 몇 가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광주시찰내 사경회 개최

광주시찰은 주로 농촌지역의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어 대부분의 교회가 재정형편상 자력으로 부흥회나 사경회를 할 수 없는 실정이므로 노회 전도부가 주선해서 광주시찰에 한하여 사경회를 갖도록 하고, 그 강사진을 교회별로 전도부가 지명하여 파송하였다.
교회별 강사 파송내용은 노회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상일교회 : 차관영 목사, 송파교회 : 노기원 목사, 보림교회 : 김희정 목사, 보현교회: 박조준 목사, 안성교회 :김남숙 목사, 분당교회 : 윤상호 목사, 야탑교회 : 이봉걸 목사

2) 경찰서 전도

영흥시찰 교역자가 주동이 되어 영등포경찰서에 유치된 재소자들을 위해 경찰서와 협의하여 1961년 11월 16일, 매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유치장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였다. 이 일을 위하여 위원회를 조직하였는바 위원은 김시원, 이정학, 방지일 목사로 구성하고, 그 첫 번째 집회에는 이정학 목사와 용재호 목사가 담당하기로 했다.

3) 영등포시립병원 전도

한편, 협동사업부와 전도부가 공동으로 영등포시립병원의 생활보호대상자인 무료환자들을 전도하기 위해 피어선성경학교를 졸업한 정혜경 전도사를 파송하여 병원전도를 하기로 제14회 노회에서 결의하고 곧 그 업무를 시작하도록 했다.
이 병원전도는 오래 전부터 한영교회의 문학선 목사가 개인적으로 추진해 왔고, 64년 성탄절에는 여전도회연합회와 영등포교회가 음식을 마련해 와 무료환자를 위문하기도 하였다. 이 사업을 노회가 맡은 후 노회전도부 사업으로 결의하고 정혜경 전도사를 파송키로 하였다. 그후 매노회시에 전도부의 기관보고로 구두로 보고해 오다가 제17회 경기노회부터 노회 촬요에 기록보고가 되어지고 있다.
지금은 영등포노회 지역내의 대부분의 병원에 노회전도부가 파송한 전도사들이 열심히 전도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제79회노회보고서(1997. 10. 26.)에 의하면 아래와 같이 파송하여 병원전도를 계속하고 있다.

- 시립보라매병원 : 홍순정 전도사, 건양병원: 민경순 전도사
- 천사복지원: 이윤세 전도사, 서안복음병원 : 이봉순 전도사
- 영등포진단방사선과 : 이기자 전도사, 대윤병원 : 윤정자 전도사
- 신화병원 : 구민자 전도사, 새생명병원선교 : 정순덕 전도사, 동작순천향병원 : 구민자 전도사

4) 한남노회 창립기념 전도

제2회 한남노회에서 전도부와 여전도회연합으로 노회 창립기념 교회를 설립하기로 하고 경기도 이천군 이천읍에 전도인 정두병 장로를 파송하여 전도하기로 결의하였다. 그후 제3회 노회에서 이천 개척전도사로부터 그간의 전도현황과 교회건축 중에 있는 현황을 보고받고, 교회건축을 위한 헌금을 해줄 것을 청원하였으므로 즉석에서 헌금하여 14,400환을 보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때 개척한 교회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지금 그 교회가 정확히 어디 있는 무슨 교회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교회 명부에 보면 광주시찰에 이천군 이천읍에는 교회명이 없고, 호법면 유산리에 유산리교회가 있어 혹 그 교회가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5) 선감도(仙甘島) 전도

제7회 노회에서 전도부가 주관하여 노회 회계인 박수덕 장로로 인천지구의 선감도를 시찰케 했다. 선감도는 80여 세대, 1천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경기도가 소년교도원으로 사용하는 섬이다. 12세에서 19세까지의 소년범 200여 명을 수용하는데, 원장 이하 8명의 직원이 교도소에 근무하고 있다. 최근 강원노회의 김광선 목사가 경기도지사의 주선으로 이 곳에 전도의 길을 열게 되었고, 김 목사는 제8회 노회시 본 노회에 이명이 허락되어 정식으로 노회의 전도사업을 해줄 것을 청원해 왔다.
노회는 우선 박수덕 장로로 현지를 답사케 한바, 인천에서 약 3시간 반의 뱃길에 있고, 이곳 교도소 건물은 40동이나 있으며, 이 섬에서 약 10여 분 거리에 여러 이웃 섬들이 있어 전도지로 유망하다는 보고를 하게 되었다. 노회는 새로 이명해 온 김광선 목사를 전도목사로 파송했고, 김 목사는 교도소 건물을 얻어 교회당으로 개축 중에 있다.

6) 도시교회와 농촌교회의 자매결연 알선14)

전도부는 도시교회와 농촌교회를 서로 자매결연을 맺게 하여 상부상조하게 하였다. 그 자매결연된 교회명단을 다음과 같이 노회보고서에 기록하고 있다.

새마을교회­산대리교회(경남시찰) 영은교회­역삼교회(광주시찰)
양평동교회­송파교회(광주시찰) 영남교회­평일교회(경남시찰)
당산동교회­서포교회(경남시찰) 노량진교회­유산교회(경남시찰)
명수대교회­호게교회(영흥시찰)

위의 교회들은 서로 돕고 협조하여 경제적인 면은 물론 사경회 등을 돕기로 하다.

8. 기아해방운동

국가적으로 정부주도하에 시행하고 있는 기아해방운동(飢餓解放運動)에 우리 교계(敎界)에서도 기독교연합회 주관으로 기아해방운동을 전개하기로 한바, 우리 노회에서도 기아해방운동위원회를 구성하고 노회산하 전교회에 적극협력을 당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그 방법을 제시했다.
노회가 발표한 방법은 개교회는 교인 일인당 쌀 5홉 또는 돈으로 20원씩, 주일학교 학생은 쌀 한 봉투 또는 돈으로 5원씩을 거출하여 보내기로 했다. 영흥시찰에서 기아해방운동으로 거출해 보내 온 현황은 다음과 같다.

1) 한남노회의 공로목사님들(1958년­1966년 한남노회 기간)

○ 배진성 공로목사
배진성 목사님은 한남노회 창립 당시 회원명단에 공로목사로 기록되어 있으나 배진성 목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노회록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도림교회 70년사」 58쪽에 배진성 목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신촌교회가 영등포교회로부터 분립된 1930년부터 1935년까지 영등포교회를 담임하면서 두 교회를 순회하며 당회장일을 주관해 왔다. 그후 영등포교회를 중심한 영등포 지역에서 목회활동을 하던 중 1944년 12월 일본경찰에 구속되었다가 해방과 함께 출감했다. 그는 해방 후에도 사경회 인도 등을 통해 영등포교회와 도림교회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일을 챙겨 주었다.”
배진성 목사는 경기노회와 한남노회가 분립하던 바로 전해인 1957년에 영등포교회의 공로목사로 추대되었고, 1964년에 86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소천하셨다.

○ 김청달 공로목사
영흥시찰의 영서교회를 시무하시던 김청달 목사님은 1960년 4월 양평동교회에서 개회된 제4회 노회에서 공로목사로 추대되었다. 이는 한남노회가 창립된 이후의 첫 번째의 공로목사님으로 기록된다.15)

○ 강헌집 공로목사
한남노회의 제2호 공로목사는 창립노회시 초대 노회장을 역임하신 노량진교회의 강헌집 목사님께서 제6회 한남노회(61. 4. 10.)에서 공로목사님으로 추대되었다.16)
강 목사님은 은퇴 후에도 남은 여생, 호흡이 있는 날까지 교회를 돕고 봉사하며 살 것을 결심하고 양평군 옥천면 고읍교회에 가셔서 수고하시다가 1964년 7월 12일 정오에 숙환으로 소천하시어 7월 14일 오전 9시 망우리 가족묘지에 안장되었다.

○ 박선택 공로목사
제14회 노회(1965. 4. 5­6. 영등포교회)에서는 오류동교회가 청원한 동교회의 박선택 목사님을 한남노회 제3호 공로목사로 추대하였다.

2) 증경총회장 유재한 목사 소천

양평동교회의 위임목사이시며, 한남노회의 제2대 노회장(1960­1961)을 역임하셨고 한남노회에서는 처음으로 총회장(제45대:1960. 9. 22­26.)을 역임한 바 있는 유재한 목사님께서 1963년 4월 25일 고혈압으로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하셨다. 노회는 긴급 임원회를 열고 유 목사님을 노회장(老會葬)으로 모시기로 결의하고, 4월 27일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장례예배를 거행했다. 한편 임원회에서는 고인의 기념비를 묘지에 세우기로 하고, 묘비건립추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동위원회는 묘비건립과 유족을 위한 모금을 하여 7월 31일,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고인을 아끼던 80여 명의 노회 임원들과 친지들이 모인 가운데 묘비 제막예배를 드렸다. 총공사비는 24,630원이 소요되었고, 남은 돈 5만 8천 원을 유자녀(遺子女) 장학비로 유족에게 전달했다. 고 유재한 목사는 1925년 당시 신학생 조사(助師)로 양평동교회에 부임하셨다가, 평양신학을 졸업한 후 1939년 다시 목사로 부임하셨다. 일제말기 여러 가지 여건에 밀려 사임하시고 중국 등지에서 독립운동 등의 일에 관여도 하셨다. 목사님은 해방 후 6·25동란시까지 사회와 정계(政界) 등에서 몸담아 일하시었다. 세 번째로 1957년 양평동교회의 위임목사로 오셔서 교회와 노회와 교단 총회의 분열 등의 와중에서 교단통합을 위한 노력을 주도하며 총회장까지 역임하셨다.

3) 이기혁 목사 제47대 총회장에 피선

인천제일교회의 담임목사이며, 제3대 한남노회장을 역임하신 이기혁 목사님께서 제47회 총회(1962. 10. 영락교회)에서 제47대 총회장으로 피선되었다. 이로써 우리 노회로서는 두 번째 총회장을 배출하게 되었다. 이기혁 목사님과 첫 번째 총회장님을 역임하신 유재한 목사님과의 총회장 선출에 얽힌 다음과 같은 미담을 당시 총대에 동참했던 이정학 목사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다.
같은 노회내에서 지도급 인사로 활약하셨던 이기혁 목사님과 유재한 목사님은 선후배 관계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며 지내던 사이라 했다. 중부지역의 총회장 회기인 제45회 총회 때, 교단분열을 일으켰던 제44회 총회시 분열을 평화적으로 수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신 유재한 목사가 총회장 후보로 추천되었고, 또한 이기혁 목사도 추천받게 되었다. 이때 이기혁 목사님이 발언권을 얻어 “형님벌인 유재한 목사가 먼저 총회장을 하셔야지, 아우인 내가 같이 총회장을 경선할 수 있겠는가? 나는 총회장에 당선되도 안 할 것이니…….” 하시면서 즉석에서 퇴장하시어 그 길로 인천으로 직행을 하셨다고 한다. 물론 유재한 목사가 경선 없이 총회장에 피선되셨고, 다음 차례가 되매 이기혁 목사가 당연히 경선 없이 총회장에 피선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선배 목사님들의 아름다운 미담은 오늘 우리 총회가 본받아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기혁 목사님은 1952년 3월 인천제일교회에 부임하시고, 특히 교육사업에 많은 일을 하셨다. 학교법인 제일학원(인성초등학교, 인성여자중학교, 고등학교)을 설립하여 인재양성에 공헌하였으며, 모자원을 경영하셨고, 용천노회장, 한남노회장, 총회장을 역임하셨다.
목사님은 1966년 원로목사로 추대되셨고, 1984년 4월 6일 86세로 소천하시어 총회장으로 인천제일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1983년 11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받기도 하셨다.
 
4) 영등포교회 초대 장로 김상옥 장로 소천

1964년 7월 1일 영등포교회 설립자인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영등포교회 초대 장로로 시무하시던 김상옥 장로는 81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영등포교회는 7월 4일 영등포교회장으로 장례를 모시었다

5) 아들 목사에게 교회를 인계하신 유병관 목사

1963년 4월 9일 영은교회에서 개회된 제10회 노회에서 제5대 노회장으로 유병관 목사(도림교회)가 피선되었다. 유 목사님은 1947년 3월부터 도림교회에 부임하시어 건축 중에 있는 교회를 완공하기까지 또한 도림교회가 한남노회의 손꼽히는 교회로 성장하기까지 밑거름이 되셨고, 많은 공헌을 하셨다. 유 목사님은 1974년 11월 도림교회를 은퇴하시면서 아들 유의웅 목사에게 교회를 인계한 우리 노회에서는 보기드문 분으로, 은퇴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셔서 교회를 개척하며 활동하시다가 1988년 5월 소천하시었다.

6) 영동교회 창립자 김시원 목사

한남노회에서 여섯 번째 노회장으로 김시원 목사가 선임되셨다. 김시원 목사는 한남노회 창립 당시부터 초대 노회장 강헌집 목사, 유재한 목사 등 원로목사님을 도와서 노회일을 뒷바라지한 젊은 목사였다. 김시원 목사는 1956년 8월 영동교회를 부임하여 28년간 영동교회를 담임하시며 교회를 부흥시키는 공헌을 하시었다. 1973년 경기노회가 제1차 분립하면서 소속 노회가 달라졌다. 1984년 12월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교회 분규와 재판 사건들


1. 월남교역자(越南敎役者)들의 중혼문제(重婚問題)

제5회 노회(1960. 10. 3. 인천제일교회)에서 시찰보고 중 산본리교회의 김관석 목사의 중혼문제가 처음으로 대두되었다. 6·25동란 이후 북한에서 월남한 목사님들 중에는 북에 가족을 두고 단신 월남하여 목회를 하다가 할 수 없이 남한에서 다시 결혼하므로 이것이 중혼으로 문제가 된 분들이 여러분 계셨다. 이것이 급기야는 총회에까지 비화되게 된 사건의 시초가 된 셈이다. 노회는 이 문제를 임사부에 넘겨 토의하도록 하였던바, 임사부에서는 이 문제를 중히 여겨 노회재판부를 설치하여 중혼문제를 심의케 하고, 7인의 재판부원을 회장으로 자벽케 하였다. 위원으로 유재한, 최석주, 노기원, 강헌집 목사와 임병덕, 김성호, 김문협 장로 등을 선임하였다.
선임된 재판위원회는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조사한 결과를 제7회 노회에서 중혼한 교역자와 해당교회에 노회장과 부노회장, 그리고 회계 등 3인을 보내어 충고와 권면을 하도록 결의하였고, 제8회 노회에서는 중혼문제가 있는 3개 교회에 해당시찰에서 대리당회장을 파송하여 교회를 관리토록 결의하고, 이 문제는 제42회 총회의 결의<전란 기타 불가항력으로 인하여 부처(夫妻)가 이별한 후 이상 전문을 근거로 하여 중혼(재혼)에 관한 건은, 아내를 두고 다른 데 장가드는 일은(마 5:32, 고전 7:1­40, 기타) 위반이므로 의법 처리할 일이오며, 제42회 총회 회의록, p. 50.>에 따르도록 결의하였다. 이 문제는 다시 제14회 노회에서 중혼교역자 치리안을 총회에 헌의키로 결의한 안건을 반려하고 재판부를 설치하여 치리키로 결의하였다가 제17회 노회에서 이 문제는 총회의 결의에 따르도록 결의함으로써 일단락지었다.

2. 상도교회 분규문제

제14회 노회(1965. 4. 5.=영등포교회)에서 처음으로 상도교회 분규문제가 보고되었다. 노회에서는 상도교회 분규문제 수습을 위하여 전권위원 9인을 선임하여 해결토록 결의하고 전권위원은 공천부에 맡겨서 선정하여 보고토록 하였는바, 이기혁, 김시원, 차관영, 방지일, 이정학, 박선택, 림인식, 유병관, 최용찬 제씨가 선임되었다.
동위원회는 위원장에 김시원 목사, 서기에 림인식 목사로 조직을 하고, 분규당사자 등을 불러 다음과 같은 합의를 보았음을 제15회 노회(1965. 10. 4. 인천제일교회)에서 보고하였다.17)

<결의사항>

1) 본 전권위원과 양측 당회원이 합석하여 교회를 나누기로 하고 다음과 같은 각서를 나누어 갖기로
한다.

(1) 각 서: 본 상도교회 문제는 하나님 앞과 한남노회 전권위원들 입회하에 다음과 같이 공동으로 서약합니다.

① 싸움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울 염려가 있으므로 나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② 현재의 교회명칭은 양측이 모두 바꾸기로 한다.
③ 교회재산 분배는 목록을 나누어 먼저 제시하는 편의 의견대로 하되, 후자가 기득권을 갖기로 한다.
④ 목사편에서 재산목록을 제시하고 장로측에서 선택하기로 한다.
⑤ 위의 조항대로 하는 것을 변치 않고 시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기에 힘쓴다.

주후 1965년 4월 8일
상도교회 재산 제안자 김형제 공세린 김동순
선택자 김성념 방성관 김희철

(2) 재산분배

[머무는 편]

① 예배당 대지 지번 661, 663. 신매입 100평
② 예배당 건물, 전도사 사택, 사찰 사택, 석유창고
③ 동 산:긴 의자 반, 녹음기 1개, 마이크 앰프 1대, 음악종, 전화 4­6445, 풍금 신형 1개, 기타 목록 이외의 동산 일체

[나가는 편]

① 새 대지 8,940평, 수암면 묘지 16,980평(묘지는 공동사용)
② 목사 사택 대지 66평 및 건물, 교회 앞 대지 지번 660. 170평
③ 콘세트 2동 및 사무실
④ 동 산:긴 의자 반, 녹음기(미제) 1개, 캐비넷 대형 1개, 전자오르겐 1대, 현금 부목사 전세금 15만 원은 채무로 선불하고 교육관 기금 전액

(3) 당회장:머무는 편­계효언 목사, 옮기는 편­엄두섭 목사

(4) 엄두섭 씨의 전 상도교회 위임목사는 해제하고 나가는 편 임시목사 시무 허락

(5) 양편 장로들은 전 상도교회 시무하던 장로에 한하여 양편에 나뉘인 그대로 시무장로임을 인정한다.

(6) 교회 명칭개명:옮기는 편­상도동현교회(上道東峴敎會)로 하고,

머무는 편­상도동교회(上道東敎會)로 한다.


노회 산하 연합회

1. 주일학교연합회

노회교육부 산하의 기관으로 주일학교연합회(현 교회학교연합회)가 한남노회 창립과 때를 맞추어 창립되었다. 주일학교연합회는 한남노회가 창립되던 해인 1959년 2월 27일 영등포교회에서 창립총회를 개회했다. 23개 교회에서 34명의 주일학교 교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예배를 드리고, 이어 회칙을 통과시키고 그 회칙에 의해 조직을 하였다. 초대회장에는 손원직(영등포) 장로가 피선되어 연합회 산파역을 하였다. 그 후로 주일학교연합회는 노회교육부의 지도하에 발전을 거듭하며 주일학교 교사양성을 위한 강습회 친목을 위한 연합사업을 이끌어 왔다.
1961년 11월 25일에는 영등포교회에서 처음으로 교사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설교대회, 동화, 동요, 합창대회가 개최되었다. 이와 같은 행사는 매해 거듭 실시되어 현재도 어린이 교육대회로 계속 시행되고 있다. 또한 후에는 교회학교연합회로 명칭을 바꾸고 유치부연합회(1983년 제25회 총회), 아동부연합회, 중·고등부연합회(1978년 제20회 총회)로 나뉘어 각각 독립된 교회학교연합회로 그 사업을 이어 가고 있다.

2. 청년면려연합회

지금의 청년연합회의 전신인 ‘청년면려연합회’(CE연합회)란 이름으로 1962년 2월 24일 노량진교회에서 창립총회를 가졌다. 이날 13개 교회에서 54명의 총대들이 모여서 개회예배와 회칙통과 그리고 임원선출 등으로 조직을 하였다. 초대회장에는 김도우(노량진) 집사가 피선되었다.

3. 소년면려연합회

지금은 노회록에서 그 이름을 찾지 못하는 연합회로 ‘소년면려연합회’가 있다. 창립 연도가 언제인지 확인할 수 없으나 「한남소식」지(제4호 1962. 1. 29.)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노회 소년면려연합회 원로원 위문하다.”라는 제목하에 “양력 정초를 기하여 안양원로원을 위문하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 1963년 3월 1일 오후 1시 영남교회에서 총회를 개회하였다. 11개 교회에서 150여 명의 총대들이 참석한 가운데 총회가 개회되어 새로운 회장에 김성수(영등포), 부회장에 강대선(당산동), 한옥자(양평동), 총무에 김무길(영등포), 서기는 최금준(양평동), 정성숙(양평동), 회계에 김학진(당산동), 조옥자(영남)가 선임되었다고 동지(同紙)에 소개하고 있다. 이 소년면려회는 지금의 중·고등부연합회와 비슷한 성격으로 개교회의 중·고등부 학생들이 중심이 된 연합회였다.

4. 산업전도회연합회

노회록에 처음으로 나타난 ‘산업전도연합’이란 이름은 「한남소식」지에 “산업전도연합예배”란 제목으로 “총회산하 산업전도회 영등포지구위원회 주최 제2회 영등포지구 산업신도 연합예배가 1961년 11월 12일 오후 2시 영은교회에서 영등포지구 위원회 전도부장 정영삼 목사의 사회로 10개 공장 산업전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새문안교회 강신명 목사의 설교와 산업여신도로 구성된 성가대의 찬양이 있었고, 영은교회가 제공한 다과회를 가졌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그 후로 1963년 “산업전도사 오란실 전도사 취임”이란 제목하에 “영등포 산업전도로 조직된 ‘신봉회’에서 장학금을 주어 피어선성경학교를 졸업하게 된 오란실은 새문안교회와 신봉회 합동으로 영등포지구 산업전도사로 파송받아 일하게 되었다. 앞으로 영등포지구 공장전도를 시작할 예정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1964년 2월 18일 “조지송 목사 산업전도 목사취임”이란 제목으로 “총회전도부 산업전도위원회 간사로 있던 조지송 목사는 영락교회 전도회의 파송으로 영등포지구 산업전도위원회 전도목사로 취임하였다.”18)라고 소개하고 있다.
영등포 산업전도연합회의 조직은 조지송 목사의 취임 후인 1964년 6월 21일, 영등포 공장 14개소를 대표한 19인이 회집하여 연합회를 조직하였다. 초대 회장에는 김동혁, 부회장에 이명집, 이남주, 총무에 김용백이 선임되었다.19)
1964년 4월 조지송 목사를 중심한 실무진들의 노력으로 산업전도 확장을 위해 전세 10만 원에 현재 한영교회 앞에 위치한 건물을 얻어 산업전도 사무실을 마련하고 그해 6월 1일 영등포 산업전도회관 개관예배를 위원장 계효언 목사의 사회로 드렸다. 회관은 마련되었으나 아직 아무런 사무집기가 구비되지 않은 상태여서 우선 임시로 대동모방에서 의자를 빌려서 사용했다. 이날 참석한 노회 여전도회연합회는 캐비넷 한 개를, 영락교회에서는 의자 10개, 영등포교회에서 의자 2개를 기증키로 약속했다. 동회관은 전세 10만 원에 계약이 되었는데 영락교회에서 1만 원, 대동모방, 대한모방, 동아염직 등에서 각각 1만 원씩 헌금했고, 김원철 장로 5천 원, 이춘학 장로님이 1천 원, 방지일, 계효언 목사님께서 각각 5백 원씩 헌금해 주셨고, 잔여금은 위원장 계효언 목사의 활약에 달려 있다고 했다.

5. 여전도회연합회

노회록이나 노회에 보관된 모든 기록문건 중에는 한남노회 여전도회연합회가 언제 조직이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다. 다만 제80회 영등포노회 보고서(1998. 4. 28. 신성교회)의 기관보고 중 여전도연합회에서 임순자 권사(도림, 연합회장)가 “영등포노회 여전도회연합회 약사”에 대해 쓴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959년 3월 24일 경기노회 여전도연합회로 제35회 총회시 분립되어 영등포교회당에서 이승진 전도사 사회로 창립총회가 개최됨으로써 한남노회 여전도회연합회가 창립되다.”20)
1964년 10월 26일자 「한남소식」지에 “전국 여전도대회에서 교육국을 한남노회에 신설키로 하다.”라고 소개하면서, “여전도회 전국대회에서 1964년도 사업확장을 위하여 기구개혁을 단행했다.”라고 기록했고, 개혁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여전도전국연합회 기구 중에 몇 개의 사업국을 신설하여 몇 지역 여전도회연합회에 위촉하였다.

① 선교국을 신설하고 경기 여전도회연합회에 위촉하고,
② 전도국을 신설하고 경북 여전도회연합회에 위촉하고,
③ 교육국을 신설하고 한남노회 여전도회연합회에 위촉하여 운영키로 하다.

이에 따라 한남노회 여전도회연합회에서는 64년 10월 18일(주일) 오후 2시 영등포교회에서 교육국 창설예배를 드리고 앞으로 여전도회 월례회에서 동교육국에 관한 업무 일체를 확정하고 지도할 예정이라고 했다.21)
그후 1966년 노회명이 ‘경기노회’로 개칭됨에 따라 본 연합회도 ‘경기노회 여전도회연합회’로 개칭되었다. 창립 16주년을 맞은 본 연합회는 경기노회 분립으로 당시 경기, 경기동, 경기서 여전도회연합회로 분립되었고, 제27회 총회시 다시 안양, 경기, 영등포노회로 분립되면서 본 연합회는 ‘영등포 여전도회연합회’로 그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 영등포 연합회에서는 그동안 양성담(제33대), 김희원(제35대), 김옥인(제37대) 등 전국여전도연합회의 회장을 배출했으며, 또한 제56회와 59회 전국대회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한 관록과 저력 있는 모범적인 연합회로 현재 본 연합회에는 33개 교회가 연합회에 가입되어 회원교회가 되고 있다.


한남노회의 결산

1. 신설된 교회와 노회가입 허락된 교회수

1) 한남노회 창립 이후 16회기 동안 신설된 교회수

① 신설된 교회 총수 25개 교회
② 교회가입 총수 13개 교회
③ 교회복귀 총수 3개 교회
④ 교회명칭변경 6개 교회
합 계 47개 교회

2) 목사안수인수 총 20명

3) 장로고사 합격자 총 92명

1965년 통계:
① 한남노회 교회수 104개 교회
② 목사수 85명, 강도사수 7명
③ 남전도사수 17명, 여전도사수 12명
④ 장로수 142명, 안수집사 36명, 권사 130명
⑤ 서리 남집사 614명, 서리 여집사 891명
⑥ 세례교인 7,735명, 교인 총수 17,662명

2. 시찰별 교회 분포도
<분포도 표1>


경기노회로 개명

1. 경기노회로 개명하기까지

한남노회가 전 경기노회(前 京畿老會)에서 분립될 때 한강을 경계로 남북으로 경기노회와 한남노회로 분립키로 하고, 한남노회가 1958년 11월에 창립되었다. 그후 전 경기노회는 1966년 11월 22일 제87회 노회에서 ‘서울노회’로 명칭을 변경함에 따라 한남노회는 1961년 제6회 노회 때부터 노회명칭을 바꾸자는 헌의가 있었으나, 한남노회보다 전신인 경기노회의 원래의 이름이 지역성에 가장 알맞은 이름이기에 경기노회로 결정했었다.
전 경기노회가 서울노회로 개명함에 따라 1966년 4월 상도동교회에서 열린 제16회 노회에서 다시 ‘경기노회’로 개명하기로 하고, 제51회 총회에 헌의, 이에 허락을 받았다. 따라서 1966년 11월 영도교회에서 회집된 제17회 노회 때부터 옛 이름 ‘경기노회’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경기노회로 개명 후 첫 번째 노회에서 제3대 노회장을 역임하고, 제47대 총회장을 역임하신 인천제일교회 이기혁 목사님을 원로목사님으로 추대하였다.
또한 영흥시찰과 영서시찰을 다음과 같이 분립키로 하였다.

1) 영동시찰:영등포(구 구청로터리) 로터리에서 수원에 이르는 국도를 따라 좌측 시흥군, 과천면, 의왕면 일대­노량진, 송학대, 영동, 상도남현, 상도동, 신일, 명수대, 남석, 신길동, 상도중앙, 성대, 신대방, 동작동, 신동, 봉천제일, 과천, 신성, 덕장, 의왕, 시흥, 관악교회 등(21개 교회)

2) 영서시찰:국도를 따라 우측 시흥군 서면, 남면, 안양읍 일대­새마을, 도림동, 당산동, 영서, 영등포, 영은, 영남, 양평동, 영도, 영문, 한영, 대림, 안양제일, 호계리, 산본리, 부림, 군포, 신도림, 구군포, 신월동교회 등(20개 교회)

또한 제19회 노회에서는 광주시찰을 경동시찰(京東視察)로, 김포시찰을 경서시찰(京西視察)로 그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경기노회로 개명될 때의 노회 현황을 보면 6개 시찰(영동시찰, 영서시찰, 인천시찰, 김포시찰, 광주시찰, 경남시찰)로 영동시찰 22개 교회, 영서시찰 20개 교회, 인천시찰 9개 교회, 경서시찰 20개 교회, 경동시찰 23개 교회, 경남시찰 10개 교회로 총 합계 104개 교회로 구성된 거대한 노회로 부흥되었었다.

2. 영등포지구 성서공회 자립대책위원회

1967년 1월 23일 오전 10시 영등포 제일감리교회에서 영등포지구 성서공회 자립대책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이는 성서공회의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지역별로 자립대책의 일환으로 지역별 초교파적으로 위원회를 조직하여 성서공회 사업에 협조하는 역할을 하기 위하여서 조직되었다. 이날 조직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 방지일 부위원장 이칠상
서 기 조요원 부 서 기 원성범
회 계 김사익 부 회 계 최용찬
감 사 장규익 감 사 김수일
상임위원 이양원 계효언 강종관 이정학 김시원 김보생 방영히 차경선 문학선
노윤석 조성국 차관영 김인순 황을성 배승주 곽전태 정병기 임사순
김형도 김섭인 김재술 유병관

※ 동위원회의 활동사항과 언제까지 지속되었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1)

3. 교회의 내분과 재판사건

1) 봉천중앙교회 재판사건

노회가 커지고 교회들이 성장함과 함께 여러 가지 내분(內紛) 문제들이 꼬리를 물고 발생하여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을 실감케 한다.
경기노회로 새 출발한 다음 회기인 제18회 경기노회(1967. 4.) 개회 벽두부터 봉천중앙교회는 담임목사인 박영선 목사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함으로 노회는 이 문제를 수습키 위한 위원으로 방지일, 김시원, 림인식, 엄두섭 제씨를 선임하고 이 문제를 일임하였다.2)
동수습위원회는 여러 차례 당사자들을 불러 진상을 조사했다. 그 내용은 봉천중앙교회에 출석하며 고아원을 경영하는 조혜숙 씨가 박영선 목사를 상대로 사회법정에 고소를 제기하였다. 이로 인해 교회가 시끄럽게 되고, 교회는 노회에 수습을 의뢰하는 진정서를 제출하였고, 노회는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하여 양당사자들을 불러 다음과 같이 처리하였다.

① 원고 조혜숙 씨는 서류를 취하해 가도록 하였고,
② 피고 박영선 목사는 건덕상 해 지역(봉천동)에서 4개월 이내에 이동하기로 한다.
③ 만일 불응시 조혜숙 씨는 당회에 명하여 치리케 하고, 박영선 씨는 치리회로 하여금 권징케 한다.
④ 치리위원:유병관, 차관영, 최지학, 주관준, 김준근, 곽선희, 윤문중 제씨로 구성하다.3)

제20회 경기노회(1968. 4. 8­9. 노량진교회)에서 위 치리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4)

① 면접일시:1967년 10월 16일 13시
② 장 소:봉천중앙교회 사택
③ 참 석 자:유병관 차관영 김준근 윤문중
④ 내 용: 여러 위원이 장시간 토론한 후 노회재판부 결정대로 박영선 씨에게 봉천중앙교회를 가급적 속히 떠나도록 권고하다.

박영선 씨는 노회가 결정한 대로 순종하겠다고 약속하나 시간 여유를 달라함.

그 이유로 ㉠ 숭실대학 졸업반이므로 타처로 이거하면 학업이 중단된다는 일,
㉡ 떠나갈 장소를 마련해야겠다. 단, 노회가 교회를 알선해 주면 순종하기로 하다.

⑤ 요망사항: 노회 각 시찰회에서 박영선 씨 가실 곳을 속히 주선해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제22회 경기노회(1969. 4. 7­8. 시흥교회)의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박영선 씨에 대한 결과보고가 실려 있다.

박영선 목사 치리(治理)를 위한 완전보고(1­2항 전략, 3. 결의사항만 기록)

(4) 결의사항
1967년 4월 4일 이래 박영선 목사, 조혜숙 씨의 재판을 위한 회의가 수차 모여 원만한 해결을 모색하다가 젊은 목사의 전도와 불쌍한 여신도의 앞날을 위하여 양측 합의하에 박영선 씨는 해 지역에서 4개월 이내에 이동하기로 하고, 조혜숙 씨는 고소를 취하해 가기로 화해를 성립시키고 해 사항을 제19회 경기노회에 보고하였다.
그러나 피고 박영선 씨가 수락사항을 이행치 않으므로 부득이 1968년 4월 제20회 경기노회에서 7인 치리위원회를 구성하였고, 해 위원회 보고를 1968년 10월 제21회 경기노회에서 채택하면서 해건을 재판부에 맡겨서 치리하자는 안이 채택되어 1968년 11월 22일에 박영선 씨 처리를 위한 위원회가 모여 아래와 같이 치리했다.

[치리해야 할 근거]
① 불법으로 당회장 행세한 것
② 불법으로 교회를 분립한 것
③ 화해재판을 수락하고 이행치 않은 것
④ 목사로서 사회법정에 고소한 것
⑤ 고아원과는 일체 관계치 않는다 하고 계속하여 관계하는 일
⑥ 목사의 덕의상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

이상과 같은 죄상이 뚜렷하므로 헌법 제6장 제42조, 제41조에 의하여 목사직의 시무를 정지케 한다. 이 일의 공포를 위하여 1968년 12월 4일 수요일 예배시에 재판부원 전원이 봉천중앙교회에 출장하여 공포한다.
이 판결문은 각 부원, 피고, 봉천중앙교회, 한양교회, 봉천제일교회, 옥호열 선교동역자에게 각각 보낸다.
김사익 장로 기도 후 폐회하니 오후 2시여라.

1968년 11월 22일
치리위원장 이 기 혁
서 기 이 정 학

박영선 씨 치리를 선포하기 위하여 1968년 12월 4일 봉천중앙교회에 출장하였으나 해 교회 형편을 참작하여 1개월간 여유를 주고, 공포발효는 자동적으로 효력이 발생하였다.
1969년 3월 17일 박영선 씨는 재판부 판결에서 목사직을 정직시켰으며, 교회 강단은 총회 전도부 간사 김정국 목사에게 임시로 위임하였음을 보고하나이다.

봉천중앙교회 당회장 차 관 영

1969년 10월 6∼7일 송학대교회에서 회집된 제23회 노회에서 특별위원회는 박영선 씨 치리위원회건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5) 박영선 씨 치리위원회건을 아래와 같이 보고하나이다.

① 박영선 씨 치리건은 해벌키로 가결하다.
② 봉천중앙교회 당회장은 명년 4월까지 연장하여 주실 일
③ 귀안원(고아원) 귀속에 관한 건은 노회에 일임 처리하여 주실 것을 요망하였으므로 대회에서 선처하여 주실 일

2) 이홍주 목사 재판건

동재판부는 또한 이홍주 목사에 관한 재판건을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이홍주 씨는 제7계를 범한 죄상이 현저하므로 권징조례 제6장 제41조에 의하여 면직하기로 재판한다.”6)

3) 안정리교회 분규사건

제21회 노회가 지난 후, 경남시찰의 안정리교회에 교역자 문제로 분규가 발생하여 그 교회가 갈라질 만큼 심각하게 비화되어 노회가 수습차원의 임시노회까지 소집하게 되었다. 1969년 3월 3일 오후 1시 양평동교회에서 안정리교회 수습을 위한 제1차 임시노회가 노회장 림인식 목사가 노회장인 관계로 부노회장 이정학 목사의 사회로, 림인식 목사가 안정리교회에 관한 상황을 보고하다. 이 문제의 수습을 위해 장시간 논의하다가 다음과 같이 의결하였다.(①­③까지 전략, ⑥∼⑪까지 생략)

④ 안정리교회 수습건에 대하여는 “임원회에 맡겨 처리하되 요청이 있을시 응하기로 하다.” 이상 결의하고 이히영 장로로 안정리교회를 위하여 기도케 하다.
⑤ 송한규 강도사의 ‘책임사면’이란 문구에 대하여 “도의적 책임을 진다.”라는 문구도 삽입하기로 하다.

제22회 경기노회(1969. 4. 7. 시흥교회)에서 위의 사항을 보고하고 완전 수습시까지 회장단과 회계에게 맡겨서 처리하고 강단은 임원들이 윤번으로 맡아서 하도록 결의했다.
제23회 경기노회(1969. 10. 6­7. 송학대교회)에서 특별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여 약 1년여 만에 완전 평화적 해결을 보았음을 보고했다.
안정리교회 수습위원회 보고를 아래와 같이 보고하나이다.
분규의 내용은 교역자를 옹호하는 편과 배척하는 편으로 분파되어 점차 결렬 대립케 됨으로 예배당과 유치원 두 곳에 나뉘어 예배드리는 지경에 이르렀고, 노회는 수습전권위원을 선정하여 이를 수습하게 하다.

① 지난 5월 8일, 위원(15인)회가 모여서 장시간 수습방안을 협의, 분렬되지 않도록 방안을 세우고,
② 6월 4일 이기혁 목사, 김사익 장로는 동교회를 방문, 3일간 대심방을 하여 교인들을 위무하고,
③ 6월 9일 위원회가 다시 모여서 ㉠ 예배를 방해한 집사와 교인 중 7인을 치리하기로 하고, ㉡ 유치원에 분리해 모이는 교인들이 끝까지 불순종할시는 의법처리한다. ㉢ 앞으로 2개월 한정으로 노량진교회 부목사 강택희 씨를 파송, 강단을 맞도록 한다.
④ 6월 16일 위원 9인이 안정리교회를 방문하여 전권위원회 결의를 공포하고, 그후 유치원측은 환원하여 돌아오고 치리받은 7인은 교회의 합동과 노회 지시를 순종하여 감수함으로 교회는 합동하여 강택희 목사를 기쁘게 받아들이다.
⑤ 8월 9일 이기혁 목사와 김사익 장로가 다시 방문하여 시찰하니 교회 분위기가 매우 원만히 되고, 강택희 목사를 담임목사로 노회에 정식 청원하기 위하여 노량진교회 당회에 청원을 드리기로 하다.
⑥ 8월 30일 노량진교회 당회는 이를 접수, 허락하기로 하고 강 목사는 9월 11일 동교회로 이거하다.
⑦ 9월 17일 이기혁 목사, 차관영 목사, 김사익 장로 3인이 또다시 방문하여 강택희 목사를 안정리교회 목사됨을 선포하고 노회에 임시목사 청원을 상정키로 하다.
⑧ 9월 28일 박영자 집사의 전도사직 사임원을 수리하다.
⑨ 동교회의 수습을 위하여 15차례 위원들이 왕래했으며, 위원회를 4차 회집했고 4개월간 매주일 목사를 파송했으며, 사건 발생 후 10여 개월을 요하여 완전히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7)
 
1. 경건회 대신 주제강연회를 갖기로

제1회 노회시부터 노회 기간을 2일간 계속하면서 새벽기도회와 저녁 경건회를 30∼40분간 갖고, 회무를 계속하여 왔었는데, 제17회 경기노회로 개명하면서부터는 단순 경건회를 진일보하여 일정한 주제를 전 회기 때 정하고, 주제 강연자와 분과토의 담당자를 지명하여 준비하기로 했다. 제20회 회의록에 보면 첫날인 5월 8일 개회예배(1시­2시), 회무처리(2시­5시), 그리고 저녁식사 후 7시부터 9시까지 발제강연을 의식부 주관으로 했다. 주제는 “성서적으로 본 성령의 역사”였고 강사는 방지일 목사가 저녁 8:30까지 강연을 하고, 이어서 분과별로 나누어 주제에 대한 토의를 했다.

제1분과:“신학적 이해”, 곽선희 목사 주관
제2분과:“역사적 이해”, 차관영 목사 주관
제3분과:“체험적 이해”, 김두섭 목사 주관

이상과 같이 토의가 있은 후 토의결과를 보고하는 순서를 가졌다.8)
이와 같은 주제강연회는 제25회 노회시까지 계속되다가 제25회 노회에서는 다음 회기부터 강연회를 폐지하고 오후 5시 폐회하기로 결의했다.

2. 계효언 목사 공로목사로 추대

명수대교회 원로목사이며 한남노회 제6대 노회장을 역임하시고 현재는 영등포고등성경학교 이사장으로 수고하시는 계효언 목사를 제25회 노회에서 공로목사로 추대하였다. 이는 한남노회 이후 네 번째 공로목사가 된다.9)

3. 서울 주변 개척전도위원회를 조직

제27회 노회(1971. 11. 6­7. 인천제일교회)에서는 서울, 서울동, 서울서, 경기 등 4개의 서울지역에 있는 노회가 연합하여 “서울주변 개척전도위원회”를 조직하고 이를 노회에서 보고하고 허락을 받았다. 다음은 제27회 노회보고서의 원문이다.10)

1) 서울 주변이 나날이 건설되며 확장되어 가므로 현상태로 나가면 미래의 세계적인 대서울이 교회 없는 도시가 될 가능성이 크므로 이에 대처하는 계획적인 교회건설에 힘쓰며,
2) 새로 확장되는 서민지역에는 잡종파의 불건실한 소교회들이 질서 없이 난립하는 까닭으로 안팎에 낳은 피해가 발생될 형편이어서 보다 활발한 교회개척을 힘써, 건전한 구령운동의 터를 세운다.
3) 회 원:서울노회, 서울동노회, 서울서노회, 경기노회 등 4개 노회 및 서울 안에 있는 이북노회 및 기타 전도단체가 파송하는 회원으로 구성하였다.
4) 조 직:3년조­김세진(서울동) 문창권(서울) 박치순(서울서) 정석복(서울)
김시원(경기) 김홍준(경기) 동노회평신도회장 서울서여전도회장
2년조­김재호(서울동) 전군명(서울) 서금찬(서울서) 이정학(경기)
황정식(서울동) 서노회평신도회 경기노회평신도회 서울여전도회장
1년조­김장석(서울) 백윤종(서울동) 김성수(서울서) 안광호(서울서)
림인식(경기) 동노회여전도회 서울평신도회장 경기여전도회장
5) 임원조직:위원장 김세진(서울동) 부위원장 문창권(서울)
서 기 림인식(경기) 부 서 기 김홍준(경기)
회 계 정석복(서울) 부 회 계 황정식(서울동)
총 무 박치순(서울서)
고 문 한경직 이기혁 방지일 김명선
6) 사무실은 영락교회 내 서울노회 사무실을 교섭하기로 하다.

4. 방지일 목사 제56회 총회장에 피선

1937년 총회 파송 중국선교사로 활약하다 21년 만에 귀국하여 경기노회의 소속 목사로 영등포교회 위임목사에 취임하여 많은 공로를 하면서 우리 영등포노회에서는 유일하게 두 번씩 노회장을(1961년 제4대, 1967년 제10대) 역임하신 방지일 목사께서 제56회 총회(1971년, 인천제일교회)에서 경기노회로서는 세 번째 총회장으로 피선되었다. 방지일 목사는 1979년 영등포교회에서 원로목사로 추대되어 영등포노회에서 공로목사로 추대되었다. 일선에서 은퇴하신 후에도 계속 하나님이 주신 목회의 사업을 위하여 책을 쓰시고 국내외를 돌면서 부흥회, 사경회 등을 인도하시며 시편의 말씀과 같이 호흡이 있는 날까지 전도사업을 계속하고 계신다. 방 목사님은 1998년 8월 28일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고, 9월 27일 영등포교회에서 축하예배를 드린 바 있다.

5. 경기노회 분립작업

한남노회로 출발한 경기노회는 회기를 거듭하면서 지역적으로 광대하여지고 교회수의 증가로 노회로서의 업무량이 한계를 넘게 되었고, 시찰지역의 교통면 등을 고려하여 노회의 분리 타당성을 주장하게 되어 경기노회 제29회 노회에서 분립안이 정식 의제로 채택됨으로 분립연구위원을 구성하기로 하고, 노회임원과 시찰장 및 서기로 분립연구위원을 구성했다.
제30회 노회(1973. 5. 7­8. 노량진교회)에서는 경기노회를 다음과 같이 분할하여 독립노회로 분립할 것을 결의하고 제58회 총회에 헌의키로 하였다.

① 경기노회(영서시찰과 경남시찰 지역)
② 경기동노회(영동시찰과 경동시찰 지역)
③ 경기서노회(인천시찰과 경서시찰 지역)

제30회 노회보고서에 기록된 경기노회의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았다.

① 영동시찰:노량진동, 시흥군, 대방동, 신림동 등 4개 지역으로 26개 교회
② 영서시찰:영등포동, 안양, 경기 시흥, 화곡동, 부천 등 5개 지역에 27개 교회
③ 인천시찰:인천시내 전역으로 25개 교회
④ 경동시찰:청담동, 광주돌마, 신촌, 성동구, 여주군 등 5개 지역에 22개 교회
⑤ 경서시찰:김포읍, 강화읍 전 지역에 15개 교회
⑥ 경남시찰:경기 용인, 이천, 평택, 안성 등 4개 지역에 21개 교회

한남노회로 출발한 경기노회는 총 6개 시찰, 21개 지역, 136개 교회가 회원으로 구성된 대노회로 성장했다.


성숙해 가는 경기노회

1. 분가(分家)시킨 심정으로 새 출발하는 경기노회

1972년 11월 7∼8일에 인천제일교회에서 회집된 제29회 노회는 경기노회 분립연구위원회를 구성했다. 동위원회는 제30회 노회(1973. 5. 7­8. 노량진교회)에서 현재의 경기노회를 3개 노회로 분립하는 안을 제안했고, 노회는 이를 의결하고 총회에 헌의하였다. 총회의 허락을 받은 경기노회는 제30회기를 끝으로 한남노회 때부터 동고동락하던 영서시찰과 경남시찰을 제외한 4개 지역 시찰을 분가(分家)시키는 부모의 심정으로 서운함을 감추고 이별을 하게 되었다.
1973년 11월 5일 경기노회는 영등포교회에서 제31회 노회를 개회하고 분립예배를 드리고 저들을 환송했다.
‘경기동노회’(京畿東老會)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상도중앙교회로 떠나 보냈고, ‘경기서노회’(京畿西老會)는 인천제일교회로 분가하고, 동일 하오 7시 허전한 분위기 속에서 본가(本家)인 경기노회는 한남노회 때부터 이어지는 원줄거리를 계승하며 제31회 노회를 속개하고 남은 두 개의 시찰을 5개 시찰로 재구성하며, 새로운 조직을 갖고 출발하게 되었다.
새로 조정된 경기노회 시찰은 다음과 같다.

1) 영서시찰: 영등포, 양평동, 당산동, 당일, 영은, 한영, 신곡동, 화곡동, 신남교회 등(9개 교회)
2) 영중시찰: 영남, 영서, 영문, 도림, 원광, 신도, 신도림, 새서울, 영도, 남도, 구로제일, 구로신성교회 등(12개 교회)
3) 안양시찰: 안양제일, 부림, 군포, 산본리, 대영, 호계, 논곡리, 박미교회 등(8개 교회)
4) 수원시찰: 서둔, 오산, 문촌, 고당, 내동, 성리, 평일, 석포, 북문, 율리, 수역교회 등(11개 교회)
5) 평택시찰: 죽산, 쌍지, 공도, 안정리, 석근리, 평택, 유천리, 성광, 신흥, 서탄중앙, 웅교리, 유산리, 신추리교회 등(13개 교회)

이상과 같이 5개 시찰에 53개 교회로 새 출발하게 되었다.1)

2. 장로부노회장 제도와 장로노회장 제도

노회는 소속 교회의 목사와 총대로 파송된 장로들로 구성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노회원의 자격은 헌법 제72조 “① 위임목사, 임시목사, 부목사, 전도목사, 기관목사, 선교목사, 선교동역자는 회원권이 구비하다. ② 원로목사, 공로목사, 무임목사, 은퇴목사는 언권회원이 된다. ③ 총대 장로는 서기가 천서를 접수 호명하면 회원권이 성립된다.”2)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임원구성에서 회장, 부회장, 서기까지는 목사들만의 몫이고 회계와 부회계만이 장로들에게 주어졌었다. 또한 각 부서장과 시찰장들까지도 목사만의 독점물로 여겨 오다가 한남노회 제11회(1963. 10. 7­8. 송학대교회) 때부터 장로부회장이 기용되었다. 노회록에 보면 임원개선에서 회장에 계효언 목사, 목사부노회장에 김시원 목사가, 초대 장로부노회장에 이히영 장로(인천제일)가 피선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3) 따라서 한남노회 제6대 임원 중 이히영 장로가, 제7대 김형제, 제8대 김사익, 제9대 차인선, 제10대 김문협, 11대 최용찬 장로가 피선되었다.
최용찬 장로는 11대에 이어 제16대에 두 번째 부회장으로 피선되었다가 다음해 영도교회에서 개회되었던 제33회 노회(1974. 11. 4­5.)에서 초대 장로노회장이 경기노회 제17대 노회장으로 피선되어 경기노회의 기록을 깼었다.
최용찬 장로가 초대 장로노회장의 테잎을 끊은 지 7년 만인 제24대 노회장으로 라기성 장로(영은)가 두 번째 장로노회장으로 피선되었고, 그후 6년이 지난 제30대 노회장으로 유성만 장로(영등포)가 세 번째 장로노회장이 되었다. 이후부터 노회는 매5년에 한 번씩 장로노회장을 세운다는 묵시적인 불문율(不文律)이 생겨났다. 이 불문율에 의거 5년 후인 제35대 노회장으로 박상철 장로(영도)가 네 번째 장로노회장으로, 그리고 5년 만인 제40대 노회장으로 지금의 정병택 장로가 다섯 번째 장로노회장에 피선되어 현재의 노회를 대표하고 있다. 앞으로의 노회 전망에서 현재의 임원과 앞으로의 목사회원들의 연령층이 점차 연소화(年少化) 추세에 있는 반면, 장로부노회장을 역임하고도 5년 주기에 걸려 노회장의 덕망과 자질이 충분하면서도 도중하차 해야 할 분들이 줄을 잇고 있어 앞으로는 당분간 5년 주기에 구애 없이 그때그때 인물위주로 형편에 따라 장로노회장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그러할 때 영등포노회는 더욱 화목하고 건실하고 실력 있는 은혜가 충만한 노회가 될 것이다.
다음은 제30대 장로노회장으로 봉사하였던 유성만 장로(영등포)가 물러나면서 한 인사말이다.

<화평과 통일>

이 부족한 사람이 제30대 영등포노회 노회장으로서 존경하는 여러 임원들과 함께 제59회와 60회 노회를 별 과오 없이 무사히 마치게 되는 이 자리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을 돌리고 노회원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노회 발전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협조해 주신 노회산하 각 교회의 당회장님과 당회원 그리고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 두 곳을 봉독해 드림으로 인사의 말씀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화평의 말씀은 마태복음 5:9의 말씀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통일의 말씀은 에스겔 37:17의 말씀입니다.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우리 나라 모든 국민이 한결같이 화평과 통일을 염원하고 있지만 이 땅에는 오랫동안 불화와 분쟁이 상존해 왔습니다. 본 교단의 1988년도 교육주제가 “성숙한 교회와 평화교육”이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우리가 불화 대신 화평을 위하여, 분쟁 대신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요, 시대적 요청이요,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1957년도에 분립된 영등포노회는 과거 30년간 화평과 통일을 위해 노력하였고, 현재 62개 교회가 화평과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미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한국과 한국교회를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새로 제31대 노회장과 임원으로 선임되시는 여러분에게 충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영등포노회와 노회산하 모든 교회와 기관 위에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이 영원히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의 헌법과 노회의 권위를 상징하는 고퇴를 신임 노회장에게 전달함으로 저는 이 자리를 물러나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노회장 유성만 장로
 
1. 남양만지역 특별선교지역으로 선정

제39회 노회(1977. 11. 7­8. 영은교회)에서 전도부장 문학선 목사는 전도부 사업보고에서 “남양만 간척지에 교회개척을 위한 답사(10명)를 하고 돌아온 경과보고를 하면서 이 곳을 특수선교지로 선정해 줄 것을 청원했다. 노회는 이 문제를 노회 임원회에 위임하기로 했고, 임원회에서는 남양만 지역을 ‘특별선교지역’으로 정하고 ‘7인특별선교지역 연구위원’을 선임하여 이 문제를 연구케 했다. 7인 연구위원으로는 김홍준, 오원식, 문학선, 오석희, 김형종, 라기성, 김부원 제씨를 선임했다.”4)
동위원회는 ‘남양만선교위원회’를 조직하여 이 일을 위임했다. 새로 조직된 ‘남양만특별선교위원회’는 다음과 같다.

1) 조 직:
- 위원장­박정훈 부위원장­하종관 총 무­김진홍
- 서 기­송성학 회 계­라기성 감 사­김득만 김홍준
- 위 원­김광수 김문협 박수덕 한재성

2) 경과보고:
① 77. 12. 12. 임시노회에서 남양만 선교위원회 위원을 선임하다.
② 77. 12. 28. 제1차 위원회에서 임원을 선출하고 정관 초안작성을 송성학, 김진홍에게 위촉하다.
③ 78. 3. 6. 제2차 위원회에서 정관을 심의 통과하다.
④ 78. 4. 10. 제3차 위원회에서 1978년도 사업계획안을 통과하다.

3) 보고사항:
① 원정활빈교회 건축 완공한 일과 독정지역 사회관 기공예배를 드리다.
② 미연합장로교 아세아 총무 터버 박사와 미남장로교 아세아 총무 김인식 박사들이 선교지역을 4월 18일 방문하다.
③ 캐나다장로교 해외총무 얼 박사 선교지역 방문하다(5월 3일).

4) 결의안건:
① 뉴질랜드 산 앵거스 육우(肉牛) 550두를 도입하여 남양간척지에 마을 공동육우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을 통과하고 그 실무를 활빈교회에 위임하다.
② 총회 농촌부에서 지원하는 양곡은행 기금으로 양곡은행 설립계획을 허락하다.
③ 일본 기독학생 2명을 1년간 지역봉사 및 선교실습원으로 초청하는 안을 허락하다.
④ 선교지역 내의 개척교회에 시무할 교역자 4명 초빙을 기독공보 지상에 광고하고 차기 모임에서 서류심사하여 정할 것을 결의하다.
⑤ 총회 남양만 지역사회선교위원회 위원들과 연석회의를 갖고 관계수립과 사업 추진을 위한 공동 보조사항을 협의할 것을 결의하다.
⑥ 원정활빈교회 헌당식을 4월 29일(토) 3시에 거행할 예정임.5)

위의 특수지역 선교위원회의 1년 후인 제42회 노회(1979. 5. 7­8. 중앙제일교회) 보고서에는 그동안의 설립된 교회의 보고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6)

○각 지역교회
① 호암교회:교역자­차기재 전도사(서울장신졸), 대지 300평, 건물 87평
교 인­장년 50명, 유년 80명, 중등부 14명
어린이집­어린이 70명, 보모 3명
농업개발단­육우 30두(앵거스)
신용협동조합­조합원 96명, 자산 150만 원, 건축예산 1,700만 원

② 원정교회:교역자­차재천 목사, 대지 200평, 건물 45평
교 인­장년 40명, 유년 60명, 학생회 15명
어린이집­어린이 77명, 보모 3명, 건축예산비 480만 원
신용협동조합­조합원 30명 농업개발단

③ 이화교회:교역자­미정
교 인­장년 40명, 아동 70명, 학생회 20명
어린이집­어린이 91명, 보모 5명
신용협동조합­조합원 125명, 자산 1,800만 원
농업개발단­육우 60두
주택조합­조합원 45명, 건축 9월 말 입주예정

④ 장안 1지구:교역자­김병찬 전도사(장신졸), 대지 300평(상환지)
교 인­장년 50명, 유년 75명, 학생회 15명
어린이집­어린이 85명, 보모 4명
신용협동조합­조합원 135명, 자산 300만 원
농업개발단­육우 132두, 건물 140평(본건물 1, 교육관 1)

⑤ 독정지구:교역자­이승택 전도사
교 인­장년 55명, 유년 90명, 학생회 20명
어린이집­어린이 78명, 보모 4명
신용협동조합­조합원 42명, 자산 180만 원
농업개발원­육우 83두, 공동양돈장 종두 7두

⑥ 장안장로교회:교역자­김종남 목사

○제43회 노회(1979. 11. 5­6. 양평동교회)에서 남양만선교위원회의 보고는 다음과 같이 종결을 지었다.

1) 경과보고:
① 회의 다섯 번 모임을 갖다.
② 답사 2차 실시
③ 지도회합 3회
④ 총회 선교위원회와의 타협모임 2회


2) 재정보고: 총회로부터(농어촌 자립계획에 관한 프로젝트) 1,500달러(1,226,550원)를 인수하여 168,350원을 지급하고 잔여금은 평택군 포승면 원정리 원정리교회 대책 착수금으로 1,058,200원을 지급하다.

3) 청 원 권:① 본 선교위원회를 해체하는 것을 허락하여 주실 일, 지도 경영감독은 총회 선교위원회에서 해야 할 조건임. 교회설립 시찰은 개척전도위원회에서 하고 해당 시찰회에서 시찰하면 될 것으로 사료됨.
② 농어촌 계획에 관한 프로젝트는 농촌부에 위임하여 계속 지도관리함이 타당한 것으로 알고 청원합니다.7)

2. 사회부에서 보내 온 담요 50매 분배

1980년 1월 14일 총회 사회부로부터 경기노회 사회부로 담요 50매를 배당하고 이를 적당히 그리고 긴하게 쓸 수 있게 분배해 주도록 주문해 왔다.8)
노회 사회부는 제44회 노회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1) 총회 사회부로부터 경기노회 사회부로 담요 50매를 보내 온 것을 사회부장 김영준 목사와 부원들이 의논한 결과 다음과 같이 분배하도록 결의했다.

① 안양원로원 정기환 목사, 이종순 목사님께 담요 5매와 사과 1상자를 전달하다.
② 영등포경찰서내 구치소에 담요 15매를 전달하다.
③ 화곡동 양로원에 5매를 전달하다.

사회부 임원들이 직접 전 가족 6명이 화재로 큰 화상을 입어 시립병원에 입원한 가족에게 직접 담요 전달해 드림. 담요를 전달하면서 사용된 비용 내용은 아래와 같다.

자동차 휘발유 11,700원 점심식대 5,700원 사과 1상자 7,000원
저녁식사 5,300원 필 름 1,300원 계 31,000원

3. 또 하나의 교회분규와 노회재판

경기노회가 40회를 거듭하는 20여 년간 크고 작은 교회분규 문제는 수없이 발생하였으나, 그 도가 커서 필경은 재판국 설치까지 이른 사건은 1967∼1969년까지 이어 왔던 봉천중앙교회 박영선 목사 사건 이후 두 번째 재판사건이 발생하였다.
제40회(1978. 5. 8­9. 영문교회) 보고서에 ‘재판국보고’라는 보고가 기록되어 있다.

1) 조 직:국 장 문학선 목사 서 기 라기성 장로
국 원 김득만 목사 김문협 장로
김준근 목사 박상철 장로
이정학 목사 이춘학 장로
하종관 목사

2) 진 행:제39회 노회에서 수임한 화곡동교회 사건(① 헌당, ② 투표, ③ 치리)을 다음과 같이 보고함.
① 영서시찰회 소속 화곡동교회 서리집사 김평곤 씨가 동당회를 상대로 제출한 공소건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직권으로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 계속 진행 중이오며,
② 본건에 관한 피고와 원고는 마태복음 18:15∼17에 의한 주님의 교훈대로 화해하도록 수차에 걸쳐 권면해 왔으나 성과가 없었으므로 사실심리와 증인심문 등을 위해 다음과 같이 14차례 걸쳐 회집하다(금후 재판절차:대질심문, 변론, 최후진술, 판결)(이하 생략).9)

3) 제41회(1978. 11. 6­7. 영등포교회) 보고서에서 재판과정의 중간보고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① 제40회 노회에서 중간 보고한 이후 화곡동교회 사건(① 헌당, ② 투표, ③ 치리)을 다음과 같이 경과보고 하나이다. 20여 회에 걸쳐 재판을 진행해 오던 중 지난 1978년 8월 10일 원고와 피고는 하나님과 재판국원으로 구성된 증인 앞에서 화해하기로 전재한 다음 노회 보고서에 본 화곡동교회 사건으로 인하여 모든 교회가 경각심을 높이기로 한다는 문구를 삽입키로 하고 다음과 같이 합의서를 작성 서명 날인함으로써 본 재판국에 주어진 사명을 다하였나이다.
그후 본 재판국은 합의문서에 따른 원고 김평곤 씨와 원고측 진정인 안상수 씨가 제출한 취하장을 각각 접수하였습니다.
그러나 사회문제로 비화되어 화곡동교회가 관으로부터 기소당한 사건은 현재 법원에 계류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합의서>
원고와 피고는 화곡동교회 사건으로 야기된 모든 사태에서 화해하기로 합의하고 원점으로 돌아갈 것을 증인 입회하에 상호 확약한다.
1. 합의원측에 따라 원고는 각부 기관(노회, 구청, 검찰)에 제출한 제반서류를 취하한다.
2. 피고는 원고에 대한 치리를 취하한다.
단, 원고는 준공검사가 조속히 수행되기를 지원키로 하고 본건에 대한 일체의 이의를 제기 않기로 한다.
3. 법원 문제가 해결됨과 동시 원고를 원직에 복귀시킨다. 단, 김정수 씨와 안상수 씨(취소)는 당회가 적의선의의 입장에서 해결키로 한다.10)
주후 1978. 8. 10.
원 고 김 평 곤 인
피고대표 김 학 만 인
증 인 문 학 선 인
라 기 성 인

4) 제42회 노회(1979. 5. 7­8. 중앙제일교회)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재판의 종결된 보고를 하고 있다.
제41회 노회에 기히 보고한 바와 같이 원·피고간에 작성한 합의서 내용을 상호 잘 준수하여 피고측이 제출한 별지(합의서 치리보고서) 내용과 같이 결말이 지어졌으므로 이에 완전보고 합니다.

<합의서 치리보고>

○ 출교책벌 취소보고

1978년 8월 30일 상오 10시 30분 당회에서 김평곤 씨가 교회문제로 각 기관에 고발한 서류를 취하하였음으로 본 당회는 1977년 10월 9일 당회에서 결의한 김평곤 씨 출교책벌을 취소하기로 결의하고, 그날 대예배시 교회 앞에 광고하였음을 보고합니다.

○ 복직보고

1978년 12월 13일 하오 8시 15분 당회에서 교회건축에 대한 소송사건이 법원에서 판결이 되어서 일단락되었으므로 김평곤 씨와 김정수 씨와 안상수 씨를 서리집사로 임명하기로 결의하고 12월 17일 주일 대예배시에 교회에 발표하였음을 보고합니다.11) 1979. 3. 27.

화곡동교회 당회장 김 학 만
서 기 장 종 섭

4. 한국교회 100주년 준비위원회 조직

총회 결의에 의해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 준비위원회를 다음과 같이 조직하였다.

1) 조 직:위원장 ­김학만 서 기­유의웅 회 계­윤문중

위 원­김용호 이상운 하종관 김문협 한민수

2) 청원권 선교 100주년 기념 경기노회 회관 건립

대지구입:200평, 건물 200평(2층 건물)
예 산:2억(대지 1억, 건물 1억)
모 금:① 1984년까지 각 교회 예산의 1%:6,000만 원(연 2,000만 원)

② 노회재정 1,000만 원

기 타:① 1984년 대지 구입

② 1965년 기공

3) 회의비 청원 12만 원(1회 30,000 × 4)

다음 회기인 제49회 노회(1982. 11. 1­2. 도림교회) 보고서에서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 준비위원회 보고를 다음과 같이 계속 보고하고 있다.

① 총회에서 결의한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 부담금 중 금년분의 다소를 노회시 납부하도록 촉구하기로 하다.
② 선교 100주년 기념 경기노회 회관건립을 위하여 제48회 노회시에 결의대로 83년도 각 교회 예산에 1%씩 예산을 세워 주실 일과 이를 위하여 11월 중 각 교회에 독려문을 보내기로 하다.
③ 선교 100주년기념 경기노회 준비대회를 다음과 같이 허락하여 주시기를 청원하나이다.
기 간:83년 봄 노회시(월­수), 12시
장 소:노회 장소
강 사:특별강사 초청
대 상:목사, 장로, 총대 및 일반교인
목 적:선교 100주년 감사
총회 100주년 사업에 대한 협조
선교 100주년 노회사업에 대한 협조
비 용:300,000원
④ 82년 11월 중에 큰 교회 대표자(목사, 장로)를 초청하여 노회기념관 건축비 특별모금을 위한 간담회를 갖기로 하다.12)

4) 한국교회 100주년 준비위원회의 제50회 노회(1983. 4. 25­26. 안양동은교회) 보고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조직은 생략).

안 건:100주년 기념 각 시찰별 위원회를 조직할 일
총회 100주년 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노회 100주년 위원회의 결의로 각 시찰별로 다음과 같이 위원회를 조직하다(82, 83, 84년까지).

① 영서시찰 위원장:이상운 목사 서 기:이영호 장로 회 계:정병택 장로
총 무:라기성 장로 위 원:각 교회 재정부장
② 영중시찰 위원장:박도재 목사 서 기:서광연 목사
총 무:장규완 장로 위 원:각 교회 재정부장
③ 안양시찰 위원장:서일규 목사 부위원장:홍다위 목사 이항섭 장로
서 기:유영준 목사 부서기:김경원 장로 회 계:최익성 장로
부회계:이범식 장로 감 사:이덕희 목사 이윤성 장로
④ 수원시찰 위원장:김홍준 목사 서 기:김상도 목사 회 계:박동철 장로
⑤ 평택시찰 위원장:이성우 목사 부위원장:윤혁헌 장로
서 기:김정훈 목사 회 계:고상윤 장로13)

5) 제51회 노회(1983. 10. 31. 당일교회)에서 한국교회 100주년 준비위원장 김학만 목사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① 한국교회 100주년 준비위원회 위원을 10명(각 시찰장 및 서기)을 포함하여 위원수를 15명으로 증원하여 주시며 임원 개선을 허락해 주실 일
②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 건립비 83년 미수금을 12월까지 완납해 주실 일
③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 경기노회 전도대회를 허락해 주실 일
일 시:1984년 3월 혹은 4월(3일간)
장 소:추후 결정 소요경비:50만 원
④ 한국교회 100주년 노회기 제작을 허락해 주실 일(도안:현상모집)
⑤ 100주년 위원회 운영비 30만 원을 허락해 주실 일
⑥ 총회 행사보고:100주년 기념대회

일 시:1984년 9월 16∼22일 장 소:잠실체육관 혹은 장충체육관
기념식:1984년 9월 20일

⑦ 100주년 기념관 건립기금현황
⑧ 100주년 기념 유공자 포상대상자를 신청해 주실 일

㉠ 한 교회 30년 이상 시무한 목사
㉡ 안수 후 50년 이상된 목사, 장로
㉢ 4대 목사, 장로, 선교사, 전도사, 권사

⑨ 이상으로 완전보고를 받기로 하며, 재정청원권은 재정부로 보내기로 하다.14)
이어 제52회(1984. 4. 30­5. 1. 화곡동교회) 보고서에서 100주년 기념 교육대회를 개최키로 하고 다음과 같이 실시키로 했다. 장소는 영등포교회로 하고 일시는 5월 25일(금) 오후 6시에 교회학교 아동부, 유치부 교사들을 위하여, 그리고 26일(토) 오후 4시에는 교회학교 중·고등부 학생을 위하여, 28∼29일(월­화) 오후 7시에는 청년들을 위하여 실시하며, 또한 당회원 수련회는 8월 6∼9일까지 3박 4일 예정으로 “기독교 덕목 확립”이란 주제로 동해안 일주를 하기로 하며, 100주년 기념 당회원들의 동남아 지역 순회교육을 9월 3일∼18일(16일간) 실시키로 하는 내용을 보고했다.15) 또한 동위원회의 보고는 같은 보고서 36∼40쪽에서 위원장 유의웅 목사는 다음과 같은 결과보고를 기재하고 있다.
 
[한국교회 100주년 준비위원회 보고]

1.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전도대회를 은혜 가운데 진행한 일
주 제:일어나 빛을 발하라 강 사:신현균 목사
기 간:4월 9일∼11일까지(7회 집회) 장 소:당일교회

2. 경기노회기를 제작 중에 있는 일

3. 100주년기념관 건축비 납부 현황은 다음과 같음을 보고하며 온 교회의 적극적인 협력을 요망합니다.
또한 동위원회는 제53회(1984. 10. 29­30. 강서교회)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결과 보고를 했다.

- 경기노회기(旗)를 제작하여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대회시 이를 사용하다.
- 분립노회기 제작비로 본 위원회에서 지출하기로 하다.
- 100주년기념관 건축비 미납교회에 독촉문을 보내기로 하고, 미납액은 명년예산에 반영하여 1985년 1월까지 완납하기로 하다.
- 각 교회 100주년기념관 건축비 납입현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하나이다.

4.100주년 건립기금 납입 현황

5. 서안복음병원 전도이사 파송과 정관 통과

ㆍ제49회 노회(1982. 11. 1­2. 도림교회) 보고서 50∼55쪽에서 각 기관보고 중, 보고인 민승원 장로의 이름으로 서안복음병원 보고를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 추수감사절 예배, 환자위로회­한사랑의 밤, 성탄절 축하예배
※ 개원 1주년 기념예배, 개원 1주년 강화 야유회, 원내 체육대회
※ 기드온협회 원내방문 및 성경기증, 부활절 예배, 매주 3회 예배(일, 월, 목)

ㆍ서안복음병원 이사회 명단
이 사 장:민승원 장로 부이사장:이건오 장로
서기 및 회계:이병조 전도사
이 사:한맹연 목사 하종관 목사 김경년 목사 황향옥 집사
민왕원 집사 장정숙 집사
감 사:김경년 집사 황향옥 집사

[서안복음병원 운영이사회 정관]

제 1 장 목 적

제 1 조(목 적)
본 병원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환자의 정신적, 육체적 질병과 지역사회의 의료시혜를 위해 의술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인치료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제 2 조(설치병원)
본 운영위원회는 전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서안복음병원을 지도한다.

제 2 장 명칭과 주소

제 3 조(명 칭)
본 회는 “서안복음병원 운영이사회”라 칭한다.

제 4 조(주 소)
본 회의 소재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신월동 33번지 서안복음병원내에 둔다.

제 3 장 임원과 직무

제 5 조(임원의 종류와 정수)
본 회는 다음과 같이 임원을 둔다.
1. 이사 11명 이내에 둔다.
2. 감사 2명, 계 13명으로 한다.

제 6 조(임원의 임기)
1. 이사의 임기는 2년, 감사의 임기는 2년으로 한다.
2. 보선에 의하여 취임하는 임원의 임기는 전자의 잔임기간으로 한다.

제 7 조(임원의 선임방법)
1. 이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경기노회가 파송한 1인과 병원장 1인, 원내 근무하는 원목실 교역자, 원내 기독교인으로서 구성하고 취임한다.
2. 이사장, 감사는 이사회에서 선임을 받아 취임한다.
3. 임원의 임기 전 해임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4. 임원이 본회의 업무수행상 불미한 행위가 있을 때는 이사회에서 결의하여 임기 전에 이를 해임할 수 있다.

제 8 조(이사의 선출방법과 그 임기)
이사는 병원장의 호선으로 취임하며 그 임기는 이사 재임하는 기간으로 한다. 단, 재선될 수 있다.

제 9 조(이사의 직무)
1. 이사장은 본 위원회를 대표하고 위원회의 업무를 통리한다.
2. 이사는 이사회에 출석하여 이사회의 업무에 관한 사항을 심의 결정하며 이사회 또는 이사장으로부터 위임받은 사항을 처리한다.

제 10 조(이사장 직무 대행자의 지정)
이사장이 사고가 있을 때 그 직무를 대행하기 위하여 이사회에서는 부이사장 1명을 선임한다. 부이사장의 임기는 이사로 취임하는 기간으로 정한다.
이사장이 궐위되었을 때는 부이사장이 이사장의 직무를 대행하되 지체 없이 이사장 선출의 절차를 받아야 한다.

제 11 조(감사의 직무)
감사는 다음의 직무를 행한다.
1. 이사회의 운영과 그 업무에 관한 사항을 감사하는 일
2. 감사결과 불미한 점이 있음을 발견할 때 이를 이사회에 보고하는 일
3. 전호의 보고를 하기 위하여 필요한 때에는 이사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일
4. 이사회의 운영과 그 업무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이사장 또는 이사에게 의견을 진술하는 일

제 4 장 이 사 회

제 12 조(이사회의 기능)
이사회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심의 결정한다.

1. 선교재원의 예산 및 결산에 관한 사항
2. 정관의 변경에 관한 사항
3. 이사회의 확대 또는 해산에 관한 사항
4. 임원의 임명에 관한 사항
5. 병원선교 지침에 관한 중요한 사항
6. 수익사업에 관한 사항
7. 정관에 의하여 그 권한에 속하는 사항
8. 기타 이사회에 관한 중요사항

제 13 조(이사회의 개회 및 의결 정족수)
1. 이사회는 위원 정수의 과반수가 출석하지 아니하면 개최하지 못한다.
2. 이사회의 안건은 이 전관에 특별히 규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석한 이사의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가. 부동수의 경우에는 의장이 결정한다.

제 14 조(이사회의 소집)
1. 이사회는 필요할 때 이사장 또는 직무 대행자가 소집하고 그 의장이 된다.
2. 이사회를 소집하고자 할 때에는 적어도 회의 7일 전에 회의의 목적을 명시하여 각 이사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단, 이사 전원이 집합되고, 또 그 전원이 이사회의 개회를 요구할 때에는 예외로 한다.

제 15 조(이사회 소집의 특혜)
이사장은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소집요구가 있을 때에는 그 소집요구일로부터 20일 이내에 이사회를 소집하여야 한다.
1. 재직위원 반수 이상이 회의의 목적을 제시하여 소집을 요구할 때
2. 제11조 3항의 규정에 의하여 감사의 소집을 요구할 때
제 5 장 수익사업
제 16 조(수익사업의 종류)
본 회는 서안복음병원 선교정책을 유지 운영하기 위하여 필요한 수익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제 6 장 정관의 변경
제 17 조(정관변경 의결 정족수)
본 정관은 이사 정수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변경할 수 있다.

제 7 장 해 산

제 18 조(해 산)
본 회를 해산하고자 할 때에는 이사 정수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해산할 수 있다.
부 칙
1. (통상규례) 정관시행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세칙으로 정한다.
2. 본 정관은 본 회 통과일로부터 시행한다.


경기노회 2차 3분립

1. 비대해진 경기노회

1958년 전 경기노회(前京畿老會)에서 분립하여 한남노회로 새롭게 탄생한 노회가 8년 후인 1966년 제16회 노회에서 경기노회로 이름을 바꾸고,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다가 광범위한 지역에 비대해진 관계로 제31회 노회, 출범한 지 16년 만에 제1차 3분립(경기노회, 경기동노회, 경기서노회)을 단행하였고, 그후 경기노회는 계속적인 부흥과 성장을 거듭하여 왔다. 그 결과 경기노회는 다시 효율적인 사무처리와 노회 발전을 위하여 다시 분립하자는 제안이 속출하여 드디어 제51회 노회(1983. 10. 31. 당일교회)에서 정식의제로 헌의되어 분립을 허락하기로 하고 분립위원회를 조직키로 했다. 분립위원은 노회임원과 각 시찰장, 임사부장으로 하고 다음 회기까지 연구보고케 했다.16)

2. 제2차 분립 직전의 경기노회 교세통계 (1984년도 통계)

3. 1차 분립 이후 제2차 분립 전까지의 결산

1973년 11월 제1차 3분립 이후 1984년 10월까지 11년간의 경기노회의 중간 결산서를 작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교회신설:

구로성광 영광 평촌 평동 화곡일동 수원성북 영신 세류 풍년
석수중앙 헤브론 동성 충진 풍성 용인영락 강서영은 영촌 광명
대광 시온성 안정리영생 매산 성민 신평 안성영등 평동제일 고동
용천 원삼 수원해방 평택성심 경서 산상 광영 율전영등 신월제일
샛별 소망 둔전 홍광 충성 영생 (42개 교회)

2) 교회가입:

당산중앙 영림 삼성 명학 신정제일 남부중앙 동석 선명 영산 남양활빈
여의도제일 신곡 안양 은성 수원영은 강서중앙 동성 동산 철산 원정중앙
호암활빈 혜성 삼보 비산 개봉중앙 독정활빈 안양제삼 태안선돌 장안활빈
강서제일 대림중앙 용인중부 안양돌 새예루살렘 (34개 교회)

3) 목사안수명단 ( ( ) 노회 회기)

(제31회) 황태윤(율리) 나달윤(부림) 김준영(전도목사) (3명)
(제32회) 최경택(원광) 김상도(평택읍) (2명)
(제33회) 유영목(논곡리) 이상섭(군목) 주영철(군목) 한정원(안정리) (4명)
(제37회) 김진홍(남양활빈) 조병서(안양동중고 교목) (2명)
(제40회) 김홍권(신월제일) 김승욱(영등포) 김만중(양평동) 나겸일(영은)
이우복(영은) (5명)
(제42회) 김수읍(옹교리) 윤의근(도림) (2명)
(제43회) 김종효(성일) 엄두식(철산) 정왕산(박미) 김병서(논곡)
김갑태(영은) 이영철(성광) 최선옥(중앙제일) 한상휘(수원영은)
윤종철(전도부) (9명)
(제46회) 이승태(독정) 마숙웅(내동) 정수경(수산리) 정선득(영남)
위형윤(화곡동) 서남석(당일) 이광유(화곡동) 이정규(특수전도)
조준형(선교사) 이대준(신학원) (10명)
(제48회) 엄충용(신추리) 이귀형(강서제일) 신동억(영등포공고) (3명)
(제50회) 김 철(쌍지) 김중곤(웅) 강재규(대양) 이규환(독정)
김종춘(고등) 이광열(석포) 소성진(동은) 김영배(화곡영은)
서성민(영은) 엄홍일(석정중앙) (10명)
(제51회) 노정철(매산) 김철영(당일) 김현주(군포) 박희영(고등) (4명)
(제52회) 우성환(유천리) 이민호(문촌) 안병옥(신광) 정남철(전도부)
이병조(전도부) 문종호(한광) 이하영(도림) (7명)
총 54명 목사안수 받음.

4) 장로고시 합격자 명단

(제31회) 김원배 이영기(영남) (2명)
(제32회) 강홍경 전종인(화곡동) 안화준 조창근
정상회(부림) 이윤성 강대인 이성덕(안양제일)
김경희(새서울) 운기철(신곡동) 서재환(영등포) 임우경(영등포)
정행종 권태철(당일) 조기동(은성) 오세백(마포)
강춘원(당일) 한봉희(죽산) 양재완 김경화(새서울) (20명)
(제33회) 강영구 장결래 장경철(석근리) (3명)
(제34회) 임재윤(수역) 이기화(신성) 박상철(영도) 윤장남
윤종훈(군포) 현경재(산본리) (6명)
(제35회) 이만영 유병현(도림) 허 춘(성리) 최원규(영도)
박영태 김명광(고당) (6명)
(제36회) 조정일 한상출 서석창(도림) 양안희(오산)
박용석 김성학 전문철(중앙제일) 박윤태
이억수 김성호(대영) 이백철 홍인정(한영) (12명)
(제37회) 조동욱(서둔) 소사욱(수역) 최경섭(세류) 이항섭(안양제일)
김홍복 최익성(호계) (6명)
(제38회) 박창일 권영택(영문) 조중환(신천) 권봉석
김형식(신도) 한민수(성광) 노재환(백선) 이경선
양 장 조병걸 김보영(강서) (11명)
(제39회) 황태진 정봉규 민승원(강서) 김원전(여의도제일)
박귀만 이용술(신성) 장경열(석근리) (7명)
(제40회) 이백균 권천석(원광) 김호덕(영남) 최학천(신도림) (4명)
(제41회) 구택림(영서) 이재영(오산) 박승록(세류) 박수형(세류) (4명)
(제42회) 임봉일 이영호 서의창 백성복
변기영 박병현(영등포) 안종범 박보환
김인갑 전성호 박명재 강창원(당일)
이근호(삼성) 최광수(수원영은) 성낙일 곽영록(군포)
김정득 김태배(남도) 전종호 정승택
윤상운(화곡동) 전광일(영서) 조삼위(수원영은) 이성덕(암도) (24명)
(제43회) 손인보(서문밖) 박시은 박하용 김찬규(영은)
이복규(중앙제일) 신우성(도림) 설대석 고규성
여인학(성광) 김정암(삼성) (10명)
(제44회) 박명호 김덕성 김성환(여의도제일) 경재호
김려성 김영열(양평동) 손봉연 나병주
최상치(영도) 김홍영 유충진(논곡) 정 모
김현갑(안양제3) 이연택(박미) 장상남 정용길
김광섭(강서) 이상기(안양) 김태록 김학구
한정선 최정택(안양제일) (22명)
(제45회) 이석찬 김동일(구로제일) 이재근 이병수(평택)
장규섭 고상윤(시흥) 이영복 김기석(신추리)
최상만 유상용(대영) 김영주(평촌) 노유상
박경찬(명학) 이재정 박순목 손덕균(당산동) (16명)
(제46회) 문정삼 황용상 김인권(한영) 김경원(대영)
박희영(동은) 고세희 백남정(죽산) 김영은
김봉태(신남) 김승태(목민) (10명)
(제47회) 이범식(평촌) 안승태 류병현 안동철(동은)
박황화(신성) 정원기 정원택(영남) 최용모
차인갑 김성치 김원찬(은성) 김기성
조경양(남부중앙) 양경석 장은하 화의범(영문)
김득수 김기환 김용백 이동수
임봉업(도림) 부영철 노명준 최수철
신인식 김효묵(화곡동) 이영은 홍 천(한광)
정상현 장영덕 이상석(서둔) 강병은(시온) (32명)
(제48회) 김봉식 이상윤 금병용 김종만
김학송 이종만 최경집 김택영
이부영 이강순 이화섭 이강덕
황희정 (13명)
(제49회) 김병호 이정하 김옥석 정승관
김영호 정마암 박두화(영은) 김종구(양평동)
김정환(양평동) 이춘산(양평동) 정성훈(양평동) 한승범
조승래 서병덕 홍영진 홍순재
윤 영 김갑세 임도묵 정수이
정수일 홍영웅 박종문 박석광 (24명)
(제50회) 김천수 박준순 황영수 염도의(서둔)
노생기 이홍석(논곡) 황연식 노영수(안양제3)
현수길(안정리) 김영국 김동배 안기영
박석근 이길남 김무길(영등포) 이항래(산본)
김동진(목민) (18명)
(제51회) 김형철 김용만 이천복(헤브론) 정영창(삼은)
황인덕 조창현(충진) 김오섭(수원영은) 최기량
최광진 주병선(화곡동) 김종화 최성순
심재호(오산) 유동일 장학문(목민) 이형희
노재인(신성) 조회수 김종규(독정) 나승일
김성호(홍광) (21명)
(제52회) 정낙운(해방) 윤주현(세류) 석대은(영은) 홍환표
오길수(군포) 김순기 박천석 백운선
최국환 한공섭(시온) 유장귀 장일덕
이제상(남도) 박창원(산상) 배명천 조태규
조중근(수원영은) 김장진(신추리) 유기석 윤귀선(영도)
임일재 이기영(당일) 김영진(영등포) (23명)
총 300명의 장로를 배출하다.

경기노회 제52회 노회 시찰별 교회현황표

4. 제2차 3분립 예배

제52회(1984. 4. 30-5. 1. 화곡동교회)에서 위의 노회분립위원회 위원장 김학만 목사는 그간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1) 조 직:위원장 김학만 목사 서 기 서일규 목사
위 원 5개 시찰장, 임사부장, 임원 전원
2) 보고내용:노회 3분안을 결의하여 대회에 내어 놓기로 하다.
① 영서시찰, 영중시찰을 중심으로 영등포노회(가칭)로 한다.
② 안양시찰을 중심으로 안양노회(가칭)로 한다.
③ 수원시찰, 평택시찰을 중심으로 경기노회(가칭)로 한다.

단, 영등포노회와 안양노회가 연 1,500만 원(영등포노회가 1,150만 원, 안양노회가 350만 원)을 경기노회에 5년간 보조하기로 한다. 위의 보고에 대하여 이정학 목사로 기도케 한 후 투표하여 다음과 같이 결정하다.
총 투표수:184표, 가표:153표, 부표:31표로 가결하다.17)

5. 두 번째 3분립 예배

이상 결의에 의해 제53회 경기노회는 제2차 3분립 예배를 드리기로 하여 1984년 10월 29일 오전 영등포교회 본당에서 노회장 김학만 목사의 사회로 다음과 같이 드렸다.

경기노회 3분립(영등포, 안양, 경기) 예배 및 회의순서

사회:회장 김학만 목사
묵 도 다 같 이
기 원 사 회 자
신앙고백 다 같 이
찬 송 다 같 이
기 도 이형우 목사
성경봉독 행 11:25-30 유의웅 목사
찬 양 영등포교회 성가대
설 교 앞서가는 교회 총회장 박종열 목사
기 도 설 교 자
분립경과보고 (노회서기)서일규 목사
분립선언과 고퇴 및 노회직인 증정 (총회장)박종열 목사
성경 및 헌법증정 안양·경기노회 소집자에게 (부총회장)이종성목사
축 사 (총회서기)김창인 목사
광 고 서 기
찬 송 261장 다 같 이
축 도 (증경총회장)방지일 목사

분립 행진을 아래의 순으로 하다.
1열:영등포노회-증경회장, 영등포노회장 선두로 회원일동
2열:안양노회-총회 분립위원 선두로 회원일동
3열:경기노회-총회 분립위원 선두로 회원일동18)

이상과 같이 분립예배를 드린 후 아쉬운 작별을 하고 ‘영등포노회’라는 새로운 지역성 노회명을 갖되, 옛 한남노회와 경기노회의 전통은 영등포노회가 본가의 기득권을 갖고 제 53회 정기노회를 같은 날 오후 1시 강서교회로 장소를 옮겨서 개회를 했다. 개회예배는 분립예배로 대신하고 한맹연 목사의 집례로 성찬식으로 시작했다. 이어 회무 처리에 들어가 새로운 임원개선을 하니 다음과 같다.

회 장 한맹연 목사(강서)
부 회 장 오석희 목사(영남) 부 회 장 박상철 장로(영도)
서 기 유의웅 목사(도림) 부 서 기 이상운 목사(당일)
회록서기 이용남 목사(영은) 부회록서기 서광연 목사(영서)
회 계 유성만 장로(영등포) 부 회 계 이한상 장로(영문)